예언자와 사회 박종수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 정리 5번째
- 최초 등록일
- 2013.09.03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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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5. 분열왕국시대
6. 바빌론포로기
7. 포로기 이후시대
8. 신명기사가의 역사관
9. 역대기 사가의 신학
본문내용
5. 분열왕국시대
1)북왕국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1세; 927- 906 B.C.)은 세겜과 브누엘을 재건축하고 북왕국을 굳건하게 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달성했으나 종교적으로는 야훼종교의 혼합을 초래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했으며 북방의 주변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에 노출되어 있었다. 정치상황 역시 불안하여 주변국과 결혼동맹을 맺어 자국의 평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바알종교를 비롯한 이방 종교가 이스라엘 곳곳에 스며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이 왕권을 획득하는 일련의 역성혁명 과정이 반복되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앗시리아가 점차 세력을 잃어 가면서 일시적으로 번영의 때를 맞는다. 그러나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치세 말기에 나라가 극도로 혼란한 상태였음을 증언한다. 앗시리아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富)는 사회의 특권층에만 한정되었고 정의는 땅에 떨어졌으며, 민중들은 과중한 세금부담으로 궁핍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북왕국 말기에 예언활동을 했던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사회적 혼란은 결국 앗시리아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사마리아는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의 속주로 편입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거나 강제 이주를 당했다.
2)남왕국 유다
반면에 남왕국 유다는 지리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놓여 있었고 다윗 왕통이 비교적 잘 이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