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한국사논술] 역사속의 실리주의 정책평가(훈민정음, 광해군중립외교, 친일지식인, 한미FTA)
- 최초 등록일
- 2014.06.29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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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정원 한국사논술 예상문제와 예시답안입니다.
주제는 역사속의 실리주의 정책들을 제시문으로 주고, 각 실리주의 정책에 대한 논쟁과 평가의 차이점들을 분석하는 문제입니다. 제시문으로 훈민정음, 광해군의 중립외교, 친일지식인, 한미FTA를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한 실리주의만으로는 위의 모든 사례가 일관되게 분석되거나 평가되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제시문 분석은 쉽지만 답안을 쓰기는 쉽지 않은 난이도있는 문제입니다.
예시답안도 함께 올립니다.
목차
1) 아래 네 개의 제시문은 모두 최종선택에 있어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역사의 대표적인 ‘실리주의적’인 정책,선택들이다. 각 제시문을 실리주의와 더불어 벌어진 당시 논쟁을 중심으로 요약하시오. -800자-
2) 제시문 다,라는 실리주의를 통한 선택이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비판과 논쟁에 휩싸여 있다. 제시문 가,나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올바른 역사적 선택을 위해서 다,라]의 한계점을 들고, 보완되어야 할 점이(혹은 고려되어야 할 점) 무엇인지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논하시오.-1500자
본문내용
나]
광해군 때의 정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대외정책이었다. 임진왜란 때 원병을 보내면서 조선을 도왔던 명나라는 왜란 후 국력이 한층 쇠약해졌다. 이 틈을 이용하여 압록강 북쪽에 살던 여진족 사회에서는 급속한 통일운동이 일어났다. 만포진 건너편 건주위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는 흥경노성을 근거로 하여 주변의 여진족들을 복속시키더니, 1616년(광해군 8년) 마침내 나라 이름을 ‘후금(後金)’이라 하고 스스로 한(왕)이라 칭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뻗쳐 1618년에는 푸순(撫順)을 점령하고 명나라에 대하여 전쟁을 포고했다.
<중 략>
제시문 가]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으로 당시 나랏말이 중국말과 달라 대다수 백성들의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이유로 창제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전통적으로 중국의 한자를 사대부중심으로 불편없이 써왔기에 사대부들의 큰 반발을 샀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중국일변도의 의존성을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실리성을 강조하며 한글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