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 강독
- 최초 등록일
- 2014.07.23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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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夏六月丙辰,太祖卽位于布政殿, 國號高麗,改元天授,
1.하육월병진,태조즉위우포정전, 국호고려,개원천수,
태종 6월 병진일에, 태조가 포정전에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라고 고쳤다.
2.初世祖築室松嶽之南,僧道詵,來憩門外樹下,嘆曰, 此地當出聖人,世祖聞之,倒屣出迎,相與登松嶽,
2.초세조축실송악지남,승도선,래게문외수하,탄왈, 차지당출성인,세조문지,도사출영,상여등송악,
과거에 세조(왕건의 아버지)가 송악의 남쪽에 집을 지었는데, 중 도선이, 문 밖 나무 아래에 와 쉬면서 감탄하며 말하기를, ‘이 땅은 마땅히 성인을 배출 할 것이니! (명당이다)’ 하였다. 세조가 그것을 듣고, 신발을 거꾸로 하여 나가 맞이해, 서로 더불어 송악에 올랐다.
<중 략>
20.先是 羅州管內諸郡 與我阻隔 賊兵遮絶 莫相應援 頗懷虞疑 及是 衆心悉定
20.선시 나주관내제군 여아조격 적병차절 막상응원 파회우의 급시 중심실정이보다 앞서
-나주 관내 제군들이 우리(후고구려/왕건의 부대)와 떨어져 있게 된 이유는 적병들이 길을 막아서 서로 응원할 수 없어 우의(의심스러운 마음/반란의 뜻)을 품었는데 이에 이것을 제거해 중심이 안정되었다.
-나주 관내 제군들이 우리(후고구려/왕건의 부대)와 거리가 떨어져 있었고 적병들이 서로 막아 서로 응원할 수 없어 자못 우의(의심스러운 뜻/반란의 뜻)을 품고 있었는데 이에 이르러 완벽하게 중심들이 안정되었다. [나주 관내 여러 군들이 왕건의 부대/후고구려와 떨어져 있었으니 그 이유가 견훤의 군대가 그것을 막아 서로 통할 수 없게 하여 자못 의심스러운 뜻(우의)이 있었던 것이었는데 이에 이르러 여러 중심, 관내 여러 군의 마음이 모두 안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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