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유교 도교
- 최초 등록일
- 2015.04.23
- 최종 저작일
- 20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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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교 정치 이념의 확립과 교육 기관의 정비
2. 성리학의 수용과 그 영향
3. 도교와 민간 신앙
4. 풍수지리설의 유행
본문내용
태조: 6 두 품 출신 유학자 등용, 서경에 학교 설립.광종: 과 거 제 실시 → 유학 지식인이 관료로 진출하는 기반 마련.성종: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 → 유교 정치 이념 확립, 최고 교육 기관인 국 자 감 설립, 12목에 경학박사 파견
<중 략>
고려에서는 불교와 유교를 중심으로 하여 도교, 민간 신앙, 풍수지리설이 함께 어우러져 공존하였다. 국가는 이러한 현실적 측면을 수용하여 여러 종교의 대표적 제사 의식을 국가 행사로 거행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와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국가와 왕실의 권위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국왕과 신하, 일반 백성들이 함께 축제를 즐기며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장으로 삼았다.
<중 략>
팔관회는 원래 불교적 제의에서 출발하였으나 고려에서는 산신, 용신을 비롯한 다양한 민간 신앙, 도교적 요소까지 가미하여 여러 신앙을 아우르는 형태로 거행되었다. 또한, 제사 의식 자체로 끝나지 않고 여흥과 가무, 공연을 즐기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였다. 환구제는 유교 제천 의식으로, 국왕이 인간을 대표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림으로써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신성화하는 의미를 지녔다. 또한, 국왕의 무병장수, 풍년 등을 기원하면서 국가와 백성이 단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초례는 도교에서 숭배하는 일월성신을 비롯한 여러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었다. 고려에서는 초례를 통하여 국가와 왕실의 복을 구하고 재난을 피하는 것을 기원하였다.
<중 략>
개경에서 팔관회가 열리면 개경의 관리 및 지방관이 참석하여 왕에게 축하 인사를 올리고, 송의 상인 및 여진의 추장, 탐라의 사절 등도 축하 인사와 함께 선물을 바쳤다. 이어서 무용과 음악, 놀이가 공연되었고, 궁궐 밖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놀이와 공연을 즐겼다. 이를 통해 국가와 왕실의 권위를 대내외적으로 확인하고, 왕과 관리, 백성이 공동체임을 확인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