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 강화도조약과 조미수호통상조약 및 기타조약
- 최초 등록일
- 2016.12.04
- 최종 저작일
- 2011.03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목차
1.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의 체결에서 조선정부와 개화지식인이 미친 역할은 자율적인가 타율적인가?
2. 병자수호조약의 의의는 무엇인가?
3. 병자수호조약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약 내용 중 최혜국 조관이란 무엇을 말하며,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4. 병자수호조약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과정에서 청국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5. 병자수호통상조약의‘제1조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과 평등권을 가진다.’는 조항은 어떠한 의미인가 있는가?
6.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제1조 거중조정(居中調整)조항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7.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조영수호통상조약의 조약문의 큰 차이는 무엇인가?
본문내용
1.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의 체결에서 조선정부와 개화지식인이 미친 역할은 자율적인가 타율적인가?
⇒ 병자수호조약의 채결과정은 타율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병자수호조약이 맺게 된 운요 호 사건은 일본의 자작극에 의한 것이며, 조약의 내용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조약은 조선의 주권을 위협할 만한 치외 법권 인정, 정치 ․ 경제 침투, 일본 군함의 무력침공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체결하는 과정에는 일본 측이 주장하는 13개의 조항 중에서 최혜국대우만 제외하고는 모두 수용 된 반면에 조선 측이 제시한 조항은 어떤 것도 포함되지 않았고, 조선정부와 개화지식인이 주체가 되어서 조약을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중국정부의 권유에 의해서 채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약을 맺은 뒤로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기는 자주화와 개화를 동시에 이루어야 된다는 사명을 갖게 되었는데, 조선내부의 뜻도 하나로 뭉쳐지지 않았을 뿐더러 여전히 중국정부에게 자문을 물어가면서 조약을 채결할지 말지를 결정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