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친일파.hwp
- 최초 등록일
- 2017.10.11
- 최종 저작일
-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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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김활란의 정보
2.해방 전 친일활동
3.해방 후 친일활동
4.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한 이유
본문내용
김활란의 정보
1899년 인천 출생
1907년 이화학당에 입학, 1918년 졸업한 후 이화학당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2년부터 4 년간 미국 오하이오 웨슬레안대학과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1931년 칼럼비아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이화학당, 이화여자 전문학교에 몸담았다. 귀국하여 한때 근우회와 YWCA 등 기독교 단체에서 활동
1937년부터 총독부가 주관하는 방송선전협의회, 조선부인연구회, 애국금채회 등에 참여
황민화 운동과 내선 일체운동 그리고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각종 관변단체의 임원으로 활동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이사
해방 전
김활란의 친일 활동은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30년대 중반을 넘으면서 일제는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 건설을 위해 철저한 통제망을 조직하여 우리 민족을 전쟁수행의 도구로 삼기 위해 광분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계 학교에 속한 인물들은 일제가 신사참배 등의 문제로 일제와 선교사들의 입장이 배치되었을 때, 폐교를 무릅쓰고 일제의 정책에 반기를 들 것인가, 아니면 묵수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을 맞이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