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인강 한국사 뿌리깊은 이야기 기말 족보
- 최초 등록일
- 2020.11.14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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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 인강 한국사 뿌리깊은 이야기 족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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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궁예의 출생과 성장 -> 신라사람
신라의 하대로 치열한‘왕위쟁탈’인 상황, 왕위쟁탈전의 희생양
10세에 출가 하여 중이 됨, 진성왕(891)에 절을 나와 초적세력들에 의탁함
처음에는 죽주의 기훤에게 투신함, 뒤에 북원의 양길의 부하가 됨,
양길의 군사를 얻어 북쪽 지역을 평정
2. 궁예의 나라
효공왕(904)에 국호를‘마진’으로 고치고 도읍도‘철원’으로 옮김
마진은 마하진단의 준말로 동쪽의 큰나라, ‘대동방국’이라는 뜻
궁예는 미륵불을 자처, 미륵불의 신통력, 미륵관심법을 내세우며 많은 정적들을 숙청함, 고구려 계승의식을 버리고, 불교의 나라를 만들려고 함
3. 궁예의 인물됨 (실패 요인의 3가지)
A.’반신라정책’, 왕자의 자리에서 쫓겨나 신라에 대한 적개심이 강함
B.’지지 기반이 취약’, 기반은 주로 초적 출신, 백성의 지지를 받는데 한계
C.토착적 지지세력이 미약, 북쪽 옛 고구려 지역을 차지, 신라 출신이라
직접적 관련이 적음, 북쪽에 토착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던 왕건 세력에게 밀려남
4.견훤(상주 가은현)의 출생과 성장
아버지는 아자개, 아자개는 농민이었다가 후에 스스로 장군으로 자처
견훤은 이씨,‘진훤’이라고도 부름, 호랑이 젖을 먹고 자람, 잠잘때도 창을 안놓음
비장이 되어‘무진주’즉 지금의 광주로 옴
군대를 배경으로 후백제 건국, 신라 하대의 대표적인‘군진세력’
5. 견훤과 호족의 결합
호족세력과 혼인을 통한 결합, 삼국유사에 인용된‘구인교혼설화’
그의 사위인 박영규와 지훤이 호족 출신, 호족세력과 혼인정책을 추구, 10명의 호족의 딸과 결혼, 지방 호족들과 혼인을 통하여 자신의 지배권과 영역 확대
6. 견훤과 후백제의 정치적 변화 (4개의 시기) -> 대외관계의 변화와 밀접
A.견훤이 무진주를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892~899)
‘스스로 왕 노릇하였으나 감히 공공연하게 왕이라 칭하지는 못하였다’
B.무진주에서 완산(전주)으로 세력의 근거지를 옮김(900~924)
‘입도어완산’,‘자칭후백제왕’,‘설관분직’ 본격적인 국가체제
C.고려의 왕건과 본격적으로 대립하여 서로 지배영역 확대(925~930)
후백제와 고려는 3차례 중요한 전쟁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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