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보는 한국근현대사 중간고사
- 최초 등록일
- 2021.04.28
- 최종 저작일
-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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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진으로보는 한국근현대사 중간고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1주차~ 5주차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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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주차
- 개항 전후 동아시아 정세와 조선의 대응
- 1860년대 대원군의 쇄국정책의 결과
흥선대원군에게는 두가지의 길이 남아있었다. 왕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새로운 근대국가로 나아가 힘을 길러서 우리의 주변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 설것인가. 이 두가지 갈림길에서 그는 변화보다 지키기를 선택하였다. 대표적으로 척화비가 있다. 척화비는 ‘주변열광들과 화친하는 자는 모두 다 적이다’, 오랑캐가 처들어왔는데 싸우지 않는 자는 곧 나라를 파는 자이다 화친은 매국이다’ 라고 얘기한것이다. 그래서 대원군이 취했던 정책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왕권강화정책, 두번째는 쇄국 정책이다.(병인양요,신미양요) 국내적으로는 힘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자 하였다 즉, 왕권강화를 통해 양반,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독점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왕이 모든 실권을 쥐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기를 돌파하자 라는 생각을 지녔다. 그것으로 인해 양반과 귀족들의 반발이 거세져 흥선대원군은 실각하게 되었다.
- 개항 이후 개화운동과 갑신정변의 의의
1876년 조일수호조규 이후에 청과 일본은 대립하게 된다. 일본은 조선은 자주국이다라며 청의 종주권을 부인하고 조선을 점령하기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긴다. 청나라가 조선의 종주권이다라 하는 것은 병자호란의 패배 이후 맺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성립된 것을 일본에 의해 강요적으로 조선은 자주국이다라는 선언이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한것이다. 그에 반해서 대륙의 강자이자 오랫동안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청나라는 어떠한 움직임을 보였나. 1876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서 개항된 것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앞마당이 일본에게 유린당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어떻게 이 치욕을 갚느냐 임오군란을 통해서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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