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사 시험 문제 및 모범답안(A+)
- 최초 등록일
- 2021.09.09
- 최종 저작일
-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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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문학사 시험 문제 및 모범답안(A+)
관련 강의: 한문학사
목차
1. 上古時代 漢字의 전래와 한문학과의 관련성에 관해 서술하시오
2. 통일신라시대에 吏讀가 발달한 원인과 그 의의를 쓰시오
3. 遣唐留學制가 韓國漢文學史에 끼친 영향에 관해 쓰시오
4. 삼국사기 문학사적 의의
5. 한국한문학사에서 고려 무신집권기 한문학의 특징과 의의
6. 인물로 보는 고려시대 한문학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요약
본문내용
上古時代 한반도에는 아직 글자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紀年兒覽”의 서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삼국시대 당나라 李勣의 분서와, 후삼국시대 甄萱의 분서 등을 거치며 자료가 일실된 까닭으로 漢字가 언제 전래되었는지, 漢文學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고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現傳하는 문헌을 통해 짐작해본다면, “三國遺事”‘紀異’에 기록된 단군신화의 내용 가운데 “主刑(형벌을 주관하였다)”이라는 부분을 볼 때 법의 집행을 위해 법령을 정하고 판결을 기록하기 위한 기억보조수단(문자 내지는 그것에 준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高麗史”에 고조선 때 史官을 두었고 문자로 시를 지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역시 증보된다. 또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은 사학계에서 논란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차치한다고 쳐도 역사시기로 인정 받는 위만조선의 존재가 상고시대의 한자 전래를 확실히 해준다. “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滿亡命,聚黨千餘人(위만이 망명할 때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았다)”라는 대목에서 연나라 사람이었던 위만과 그의 무리가 중국의 문자문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확증된다.
한자가 한반도에 전래되면서 한국인들은 문명의 발전을 겪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한반도에는 문자가 없었거나 아직 성숙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