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화정책과 저항, 3.1운동, 조선공산당과 계속되는 탄압
- 최초 등록일
- 2007.10.23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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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현대사또는 근현대사 시험문제!
*요약정리*
#1. 황민화 정책과 저항
#3. 조선공산당과 계속되는 탄압
#3. 3.1운동의 의의
시험 컨닝페이퍼에 적합!
목차
황민화정책과 저항
조선공산당과 계속되는 탄압
3.1운동의 의의
본문내용
<황민화정책과 저항>
1936년 8월 우가키대신 미나미지로오를 조선총독에 취임한다.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초기 까지는 일본의 국위가 최고조에 달해있던시기다. 이 시기 총독정책은 국체명징에의한 황국신민화였다. 병참기지로서의 조선의 역할이 우가키의 물질측면구조였다면 미나미는 정신적인측면구조엿다. 그는 취임과동시에 국체명징, 선만일여, 교학진작, 농공병진, 서정쇄신의 5대목표를 내걸엇다. 내선일체란 조선인과 일본인은 동등한 대우를 해준다고는 햇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않앗고, 민족개량주자들은 차별에서 탈출하고싶어 친일파가 된경우도잇다. 정신적인 측면에는 신사참배 즉,일본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것을 강제로 시키기도햇다. 황국신민의서사를 학교집회에 부르도록강제하엿고 조선어를 못쓰게하고 자국어(일본어)를 강제로 쓰게하엿다. 정신적측면에는 창씨계명도 있는데, 성중심의 가족제도를 가지고있는 조선을 일본의 씨 중심적가족제도로 바꾸려고도했다, 흔적을 인류에 남기지않는다는 민족말살정책을 핀것이다. 일본은 조선의 인적자원을 노돌력및 병력으로 전쟁에 동원하는것이엿다, 정신적측면에는 조선어말살정책도 내포되어잇엇다. 제 42부대 김완룡을 중심으로 한부대는 비밀결사로 반란을 일으켜 빨치산투쟁을 계획햇지만 실패하엿다. 그리고 제24부대는 김이현을 중심으로한 부대가 독살계획을햇으나 실패하엿다. 황민화정책을 공부하면서 많은것을 느꼇다 불과 몇십년전에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한 나쁜짓들을 우리는 잊고살앗다는것을 느꼇고 열악한환경속에서 우리 조상들에 투쟁과 용기는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가르침인것같다.
<조선공산당과 계속되는 탄압>
일본으로부터의 조선의 해방에 그치지않고 사회주의 실현을 내걸었던 공산주의조직의 출현은 1918년 러시아령에채류하고있던 조선인 그룹의 활동에서 시작된다. 1925년 4월17일 조선공산당, 18일엔 고려공산청년회가 각각 만들어졋다. 공산당과 공청은 비합법조직이다 그러나 25년 11월 박헌영의 공청사업보고서가 신의주에서 압수되는 신의주 사건으로 그 존재가 밝혀지고 탄압을받았는데 이것이 제 1차공산당사건이다,
참고 자료
한국 현대사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