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예술 B형]미술전시회를 관람한 후 관람기를 쓰시오_고갱전
- 최초 등록일
- 2013.10.09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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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폴 고갱의 삶과 철학
(1) 페루와 프랑스에서 보낸 유년기
(2) 작품 수집가로 시작한 초기 활동
(3) 빈센트 반 고흐와의 만남
(4) 인상주의와의 결별
(5) 타히티의 이국적인 매력에 흠뻑 빠진 고갱
(6) 대작의 탄생과 불행했던 말년
2. 전시의 개요
3. 전시작품에 대한 감상
(1) 황색 그리스도, 아담과 이브
(2) 안녕하세요 고갱씨,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3) 타히티의 여인들, 세 명의 타히티인
(4) 파아 이헤이헤
(5)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본문내용
1. 폴 고갱의 삶과 철학
(1) 페루와 프랑스에서 보낸 유년기
폴 고갱은 1848년 6월 7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에서 출생하였다. 34세의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과 22세의 어머니 알린 마리아 샤잘 사이에서 한 살 차이 누이 마리 고갱을 두고 태어났다. 고갱의 어머니 알린은 판화가인 앙드레 샤잘과 페루계 사회주의자 플로라 트리스탄의 딸이었다. 모계를 통해서 예술가적인 피를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은 오를레앙 출신으로 야채 생산업을 하는 소규모 실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공화주의자였으며 저널리스트였다. 1948년 프랑스는 2월 혁명 이후 임시정부가 국민의 정치결사와 정치문건의 유포에 대한 제한을 철폐했던 시기로 수 주 만에 170여종의 새로운 각종 정기간행물이 창간되었고 클로비스 고갱도 이중의 하나인 자유주의 신문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그는 철저한 공화주의자였다. 국민의 지지 속에 대통령이 된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로 루이 나폴레옹 3세로 등극하면서 프랑스 2월 혁명은 원위치 되었고, 실패로 막을 내리면서 공화주의자였던 클로비스 고갱은 알린의 작은 외조부가 총독으로 있던 페루로 망명하게 된다. 클로비스는 항해 도중에 35살의 나이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알린과 어린 두 남매는 페루의 리마라는 곳에 안착한다.
폴 고갱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페루 리마에서 불행하게 시작되었다. 그가 리마에서 보낸 시기는 1849~1854년까지이다. 리마에서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1854년 고갱의 가족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오를레앙에 정착하게 된다. 오를레앙에는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의 가족은 가난하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렸다. 1865년 12월 고갱은 선박의 항로를 담당하는 견습 도선사(사관후보생)가 되어 상선(商船)을 타고 라틴아메리카와 북극 등 지구촌 많은 곳을 여행하였다. 1871년 그가 인도에 있을 때 어머니 알린 고갱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고,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이 누이마저 칠레상인과 결혼하여 칠레로 떠나버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