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현장을찾아서) 교재 제4부 ‘근대화와 도시의 변모’를 참고하여 자신의 거주하는 지역을 답사하면서 근현대시기동안 변모의 흐름
- 최초 등록일
- 2021.08.12
- 최종 저작일
-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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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목명: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과제명
1. 교재 제4부 ‘근대화와 도시의 변모’를 참고하여 자신의 거주하는 지역을 답사하면서 근현대시기동안 변모의 흐름을 찾아볼 것.
2. 답사를 하기 어려운 경우 교재 제 4부에서 사례로 든 인천, 대전, 대구 세 도시의 근대화시기 변모의 양상을 비교할 것.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인천의 변모양상
2. 대전의 변모양상
3. 대구의 변모양상
4. 변모 양상 비교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인천과 대전, 대구는 근대화의 역사에서 다른 지역들보다 극적인 변모양상을 보였던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인천의 경우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항구’라는 특성이, 대전의 경우 ‘철도’라는 특성이, 대구에는 그것보다 깊이 살펴보아야 할 ‘식민정치적’ 특성이 반영되어있다.
본론에서는 인천과 대전, 대구의 근대화 변모양상을 살펴보고, 각 도시의 비교분석을 진행해볼 것이다.
Ⅱ. 본론
1) 인천의 변모양상
1876년 조선은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맺으면서 개항하게 되었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었다. 주변국들은 침입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부산, 원산 다음으로 인천의 개항을 요구하게 되었고, 1883년 1월 인천의 개항이 이루어졌다. 일본은 전관조계를 인천에 설정해 거의 무상으로 조계지를 대여했으며, 자유롭게 통상활동을 보장받게 되었고, 조선 정부는 세금을 거둘 수가 없었다. 조계지의 협소함을 이유로 일본인들은 대거 조선의 거주지대로 침투했고, 청나라도 달려들었다. 만국 조계는 4지구로 구분되게 되었고 조선인들은 각국조계에서 밀려나 외곽지대로 분포하게 되었다.
개항 이후 인천은 변모를 거듭했다. 일본인과 청국인의 인구가 늘어났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불법 사주, 토지 사기, 아편, 밀무역, 매음 등 각종 문제가 생겨나기도 했다. 도시기능의 변화도 일어났다. 갑신정변 이후에는 1895년에 우체사가 설치되었고 우편 업무를 보았다.
참고 자료
송찬섭 외 ‘역사의현장을찾아서’ 한국방송통신대출판문화원
김일수. (2015). ‘한일병합’ 이전 대구의 일본인거류민단과 식민도시화. 한국학논집, 59(), 257-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