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역사 속의 박문수
Ⅱ-1. 정치 관료로서의 행적과 위민(爲民)정책
Ⅱ-2. 박문수 어사 이력에 대한 고찰
Ⅱ-3. 인간적 매력 및 성격
Ⅲ. 설화와 소설속의 박문수
Ⅳ. 현대의 박문수 이미지 형성 과정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989년에 박인호 씨가 작사, 작곡하여 대중적 인기를 끈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이란 노래를 보면 ‘어사 박문수’ 란 구절이 등장한다. 또한 누구나 소설 『박문수전』을 통해 암행어사로서의 박문수(朴文秀, 1691~1756)의 활약상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듯이 박문수는 암행어사의 대명사로서 널리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박문수의 이러한 이미지를 형성시킨 것은 소설을 비롯한 아동도서, 위인전, 만화, 드라마, 영화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어려서부터 접하게 되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역사가 아니라 흥미유발과 극의 완성도 따위를 위해 가공 생산된 박문수의 형상이었다. 그 모습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사실로서 받아들임으로써 오늘날까지 박문수하면 그저 암행어사로서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들을 사랑했던 인물로만 알려져 있는 것이다.
<중 략>
지금까지 살펴 본 박문수의 ‘암행어사 이미지’ 의 형성 과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수많은 박문수 설화를 발생시킨 것은 실제로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파견된 것은 아니지만 별견어사 및 감찰사로서 지방의 민심에 이상적 관료로서의 일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즉, 박문수가 위민(爲民)사상과 무식하지만 강직하고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백성들은 더욱 친근감을 느꼈고 이에 당시 민인들이 바라던 민중의 구원자로서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분명히 이야기가 과장되거나 각색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절반의 허구, 절반의 사실이 다양한 이미지로 확장된 것을 일제치하에 최초의 구활자본 『박문수전』을 시작으로 현대소설에서까지 작자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굳어져 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설화가 생성되던 시기나 소설로서 재탄생되던 시기에도 당시 시대상황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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