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중국과 일본을 통한 서양정치 사상의 수용
- 최초 등록일
- 2000.11.19
- 최종 저작일
-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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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말 서양 정치사상은 두 나라를 통해 수용되었다.
1. 중국을 통한 수용
2. 일본을 통한 수용
<참고자료>
韓末의 서양정치사상 수용 / 문중섭 저 [경성대학교, 1998]
본문내용
한말의 서양 정치사상 수용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중국을 통한 수용방법이고 두 번째가 일본을 통한 수용방법이라 하겠다.
먼저, 중국을 통한 수용방법을 보자.
한말까지 우리 나라는 중국과 역사적으로 깊은 연대 관계 속에 있어왔고 그러한 양군관계에서 우리 나라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아왔다. 이 점에서 볼 때 초기 개화사상가들이 중국을 통해 서양의 근대문명을 수용한 것은 자연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임진왜란을 통해 최초로 서양문물과 접촉한 한국에 17~8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양의 종교, 과학, 지리, 역사에 관한 상당한 정도의 지식이 전파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 서학이 유입된 것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비롯된다. 이 후 여러 학자들을 통해 수용되었고 1860년대와 1870년대에는 주로 박규수, 오경석이 중국을 매개자로 하여 서양의 근대문명을 수용하였고,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은 다시 이들을 중개자로 하여 서양 근대문명을 수용하고 <해국도지>, <영환지략> 등을 통해 개화사상을 형성하였다. 이 책들 중 초기 개화사상가들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친것은 주해편에서 양이를 막기 위해서는 서양의 선진과학 기술을 과감하게 채용해야 한다고 역설한 해국도지였다. 이점은 박영효가 유길준에게 해국도지를 주면서 "지금에는 외국에 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고, 이에 유길준이 분발하였다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