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편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진수(陳壽)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는 천하의 패권(覇權)을 둘러싸고 3국이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당(唐, 618~907) 시대에 이미 3국의 이야기가 야담(野談)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으며, 송(宋, 960∼1279) 시대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설화인(說話人)들의 이야기 대본인 화본(話本)으로 정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당시 곽사구(禱四究)의 ‘설삼분(說三分)’은 매우 유명했으며, 인종(仁宗, 1010~1063) 때에는 3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피영희(皮影戱)’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元, 1271∼1368)의 영종(英宗, 재위 1320~1323) 때, 전래되던 화본(話本)들을 바탕으로 푸젠성(福建省) 젠양(建陽)의 출판업자 우(虞)씨가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그림, 아래에 글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元) 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희곡이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錄鬼簿)》에 따르면 그 수가 30~40종에 이르렀다고 한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三國演義
삼국지연의
第二十五回 屯土山關公約三事 救白馬曹操解重圍
제 25회 산천에 진을 친 관우공이 3가지 일을 약속하고 백마를 구하여 조조의 거듭된 포위를 풀다.
說程昱獻計曰:
각설하고 정욱은 계책을 바치면서 말했다.
「雲長有萬人之敵, 非智謀不能取之。今可差劉備手下投降之兵, 入下, 見關公, 只說是逃回的, 伏於城中爲內應;引關公出戰, 詐敗佯輸, 誘入他處, 以精兵截其歸路, 然後說之可也。」
관운장은 만인의 적이 있으니 지모가 없어 취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유비의 수하의 항복한 병사를 하비성에 들여서 관우공을 보게 하면 다만 도망가 돌아간다고 하면 성중에 내응하여 잠복케 합니다. 관우공이 싸우러 나가면 거짓으로 패배하여 옮겨가서 다른 곳에 유인하여 들어가게 하여 정병으로 돌아갈 길을 끊으면 연후에 설득함이 가능합니다.
操聽其謀, 令徐州降兵數十, 逕投下來降關公。
조조는 꾀를 듣고 서주의 항복한 병사 수십명을 시켜서 지름길로 하비에 투항하여 관우공에게 항복하게 했다.
關公以爲舊兵, 留而不疑。
관우는 예전 병사임을 알고 남겨두어 의심치 않았다.
次日, 夏侯惇爲先鋒, 領兵五千來 (억누를 닉{익}; -총13획; nuo)
戰。
다음날에 하후돈이 선봉이 되어 오천명으로 하여금 싸우려고 했다.
關公不出, 惇使人於城下辱罵。
관우공이 나가지 않자 하후돈은 사람을 시켜 성 아래에서 욕하게 했다.
關公大怒, 引三千人馬出城, 與夏侯惇交戰。
관우공이 크게 분노하여 3천명의 사람과 말로 성을 나오니 하후돈이 교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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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삼국지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