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의 보한재집 원문과 해석 및 생애 등등
- 최초 등록일
- 2009.04.20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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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숙주의 보한재집을 해석했습니다.
원문과 해석분 둘다 있습니다. 자료의 내용은 보장합니다.
목차
1. 신숙주는 누구인가?
2. 중시대책이 쓰인 때의 상황
3. 중시대책의 원문해석
4. 중시대책 전체의 이야기
-핵심에 대하여
본문내용
1. 신숙주는 누구인가?
보한재(保閑齋) 신숙주(1417~1475)는 성삼문과 대조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성삼문 등 사육신이 절개를 지킨 충신인데 반해 신숙주는 권력의 추이에 따라 태도를 바꾼 변절자(숙주나물)라는 평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종 치세의 핵심 인물이었다. 1439년(세종21) 문과에 급제한 이후 성삼문 등과 함께 집현전의 주요 멤버였고, 1442년에는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와 《해동제국기》를 남겼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는 성삼문과 더불어 요동을 13 차례나 왕래했다. 당시 유배 중이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의 도움을 얻으러 요동을 찾았을 때 언어학자인 황찬은 그의 뛰어난 이해력에 찬탄했다. 1452(문종2)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갈 때 그는 서장관으로 수양을 따라 갔는데, 이때 두 사람의 유대가 맺어졌다.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 외직이 나가 있었으나, 수충협책정난공신 2등에 책훈되고, 곧 도승지에 올랐다. 1457년 좌찬성을 거쳐 우정에 우의정에 오르고 1459년에는 좌의정에 이르렀다. 이 무렵 동북 방면에 여진족의 침입이 잦았는데, 신숙주는 1460년 강원도와 함길도의 도체찰사로 여진족 정벌을 위한 출정길에 오르기도 했다. 1475년(성종6)에 사망했는데, 일찍이 세조는 “당 태종에게는 위징, 나에게는 신숙주”라고 말하곤 했다.
2. 중시대책이 쓰인 때의 상황
-세종대왕과 법
세종대왕은 많은 법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고 백성에게 필요한 법을 제정하고 백성에게 해로운 법을 폐하기도 했다.
세종대왕은 ‘윤대법’을 실시하여 관리들을 교대로 만나서 나라의 일을 논의하게 하였다고 한다.그리고 세종대왕은 형벌제도를 개혁했다.
바로 고문을 하는 형벌제도를 없앤 것이다.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3번 심판하게 하는 ‘삼복법’을 시행하게 했으며 1944년에는 주인이 노비를 마음대로 벌주지 못하게 하였고, 어기면 처벌을 했다. 노비도 사람이니 절대로 신체적인 학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세종대왕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1. 김태완 ,『책문』, 소나무 : 2004
2. 박현모,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푸른역사: 2003
3. 이수광, 『대왕세종』, 샘터사 : 2008
4. 원문 참고 사이트:
한국고전번역원- http://www.itkc.or.kr/index.jsp?bizName=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