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essay) 형식의 기억속의 생활공간
- 최초 등록일
- 2009.04.22
- 최종 저작일
- 2008.10
- 1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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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주거공간과 기억에 남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에 관한 추억을 12장에 걸쳐 에세이 형식으로 써보았습니다.
목차
1. 가기는 싫지만, 있기는 좋은 집
2. 많고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집
3. 거쳐 가는 집
4. 사상 최고의 집
5. 고갯길 너머 고향의 집
6.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집
7. 아직은 잘 알 수 없는 집
본문내용
나는 호주 출생이다. 물론 부모님 모두는 한국 분이시지만, 두 분이 만나서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고 내가 탄생하기까지는 그 배경이 호주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님은 내가 4살이 되던 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즉, 내가 처음 살았던ㅡ태어난 후의 얼마 후를 기점으로 하여 4살이 되어 한국으로 귀국을 하기 전까지ㅡ집은 호주의 광대한 영토 중 어느 조그마한 집이 되겠지만 기억이 전혀 나지 않으므로 이 과제물에서는 기술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렇게 내가 4살이 되어 한국으로 귀국을 한 뒤에, 우리 가족은 경기도 파주의 통일촌이라는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일촌에 있는ㅡ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계신ㅡ큰집으로 오게 되었다. 뭐, 말하자면 부모님이 한국에서 다시 경제적 여건을 마련할 때 까지만 머무는 임시거처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얼마 뒤에ㅡ아마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므로 사실 따지고 보면 얼마 뒤는 아니다ㅡ예전부터 통일촌에서 알아오던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아주 조그마한 집으로 세를 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집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앞으로 2장에서 자세하게 서술할 것이므로 이 장에서는 이쯤 해두도록 하겠다. 그렇게 세를 들게 된 뒤로, 나는 부모님이 회사에 출근한 뒤 퇴근을 하실 때 까지는 학교를 마치고 큰집에서 기다리는 형식의 조금은 독특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통일촌이라는 마을이 100여 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ㅡ사실 통일촌은 북한과 인접해있는 민통선 지역이다ㅡ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와 큰집, 그리고 세를 들어 살던 집이 모두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있었다는 것만 보아도 이 마을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나에게는 가끔 큰집에서 일찍 나와 미리 세를 들어 살던 집에 가서 부모님이 퇴근하기까지를 기다리는 일이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히 한 달에 두세 번은 그렇게 했던 것 같다. 헌데 문제는 큰집은 윗동네ㅡ마을의 위쪽ㅡ였고 세를 들어 살던 집은 아랫동네ㅡ마을의 아래쪽ㅡ라는데 있었다. 참으로 얄궂기도 한 것이, 당시 윗동네에는 개를 거의 키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들의 목줄상태도 양호했던데 반해 아랫동네에는 개도 많이 키울뿐더러 종종 목줄이 풀린 사나운 개들이 주인의 규제도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