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신촌리, 대안리 고분군에 대한 짧은 조사 내용입니다.
신촌리 고분군 중에서는 특히 학계의 주목을 받는 6, 9호분을 다루었습니다.
대안리 고분군 중에서는 특히 학계의 주목을 받는 4, 9호분을 다루었습니다.
참고한 자료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목차
◎신촌리 고분군
◎대안리 고분군
◎참고문헌
본문내용
◎신촌리 고분군
신촌리 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에 있는 마한시대 고분군으로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 중 대표적인 것이다. 이남석(李南奭)의 묘제구분에 따르면 신촌리 고분은 지상에 흙을 모아 분구를 만든 다음에 분구 내에 무덤 구덩이를 굴착하고 옹을 안치한 것이다.
신촌리 고분군은 2009년 현재 1, 2, 5, 6, 9호분만이 유존(遺存)하고 있다. 이중 학계의 주목을 받는 6호분과 9호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6호분은 1939년에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6호분을 일본 고대의 대표적 묘제인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것으로 본 아리미쓰 교이치가 발굴을 시도하여, 5기의 독널(옹관)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봉분의 형태가 일본의 전방후원분을 닮아서 비교적 최근까지 학계의 주목을 받는 무덤이었으나, 1997년 정비복원작업 때 일본 전방후원분과의 비교 조사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가령 분구의 평면형태를 보면 6호분은 사다리꼴 분구 두 개가 결합된 것이다. 이 고분은 원래부터 전방후원형으로 축조되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머리를 북쪽에 둔 사다리꼴 고분으로 출발하였다가 후대에 그 고분의 남변에서 머리를 남쪽에 둔 사다리꼴 형태로 분구가 확장됨으로써 현재의 형태로 완성된 것이다.
9호분은 신촌리 고분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무덤 전체의 중심적 위치에 있다. 규모나 입지에서만이 아니라 유물의 갖춤새도 그러하다는 것이 조사결과 확인되었다. 신촌리 9호분은 하나의 분구 내에 12개의 옹관이 안치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12개의 옹관 중, 을관에서는 금동관모(金銅冠帽) 외에 금동신발, 동제단봉문환두대도(銅製單鳳紋環頭大刀), 은제삼엽문환두대도(銀製三紋環葉頭大刀) 등 다양한 위세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 토기와 각종 옥류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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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이 밖에 더 있지만 너무 많아서 다 올라가질 않습니다^^;;
그 외의 참고자료는 본문 안에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