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역사적으로 가장 닮은 유물인 경천사 10층석탑
- 최초 등록일
- 2009.05.24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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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적인 흐름 속에 점과 같은 "내인생"과
오래전부터 끊임없는 선으로 삶을 살아온 "경천사 10층 석탑"의 연관관계를 썼음.!!
이것은 나의 삶의 환경과 역사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글로 썼습니다...
목차
① 그들이 살았고, 살아가는, 살아갈 시대상황
② 그들이 지닌 차별성 전략
③ ‘유랑하였던’ 그들
④ 그들의 관계
*기타 탑에 관련 자료
본문내용
중앙박물관 1층의 복도를 걷다 실내에 있는 거대한 석탑을 보게 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길이에 깜짝 놀란 것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건물 내부에 탑이 있는 광경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강렬한 첫인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았을 때 전체적으로 무늬가 흐릿하게 되어있고 탑의 밑 부분이 많이 파손되어 있어 ‘에이, 뭐야.. 탑이 별로잖아?’ 하고 뒤돌아 다른 곳을 관람했다. 표면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고 정교한 무늬로 표현된 다수의 유물들을 접하면서 나는 경천사 10층 석탑을 아예 잊어버렸다. 하지만, 석탑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나의 섣부른 판단을 반성했고, “경천사 10층 석탑”이 나의 모습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① 그들이 살았고, 살아가는, 살아갈 시대상황
경천사 10층 석탑은 1348년 고려시대 충목왕 때 경기도 개풍군의 부소산에 있는 경천사 터에서 탄생했다. 그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서 역할을 했지만 사실상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경천사 10층 석탑의 조성 계기도 고려를 짓누른 친 원나라파 세도가들의 발원이었다고 한다. 이 석탑 이전에 설치된 고려의 탑과 달리 경천사 10층 석탑이 몽골의 탑 양식으로 거의 만들어 진 사실을 보면 그 당시 원나라의 압력과 입김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0층 석탑은 통감부 설치 이후 한일합방 사이의 기간 (1905~1910)에 일제의 억압을 받고 있었을 때, 약탈까지 되었다. 1906년 12월경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정부의 고관이었던 다나카 궁내대신은 문화재 약탈이라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다나카는 탑 해체를 저지하려는 마을 주민들에게 “고종황제가 기념으로 하사했다. 이 대리석탑을 서해를 통해 도쿄의 내 집 정원으로 운반할 것이다.” 라는 허위의 주장과 공갈 및 총검의 시위로 인근 주민의 저항과 관할 군수의 항거를 묵살하였다. 그렇게 석탑을 마구 해체, 포장하여 야밤에 일본으로 반출 범행을 감행했다. 이는 한국의 임금님을 판 치밀하고 완벽한 문화재 약탈 작전 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