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논쟁
- 최초 등록일
- 2009.05.25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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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세자의 죽음에 대한 논쟁
3. 병사설에 대한 반론
4.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645년 (인조23년) 음력 4월 26일 인조의 장남이자 왕세자였던 소현세자가 학질로 진단 받은 지 3일 만에 창경궁(昌慶宮) 환경당(歡慶堂)에서 죽었다. 조선시대 임금, 세자 가운데 독살설이 제기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 의혹이 가장 큰 인물이 소현세자일 것이다. 실록의 기록 중에는 소현세자의 시신상태를 언급하면서 독살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우회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후 소현세자의 독살설은 끈임 없는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세자의 죽음에 대한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조에 의한 독살설 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반하는 내용으로 병약하여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이 두 설에 대하여 정리한 것을 살펴보며 과연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세자의 죽음에 대한 논쟁
1) 잘못된 처방설
이 설이 주장하는 바는 누군가에 의해 죽음이 온 것이 아니라 지병과 오진으로 인한 처방 등, 병사하였다는 것이다. ‘을유소현동궁일기(乙酉昭灦t東宮日記)’ (이하 을유동궁일기)의 기록을 분석하여 세자가 병들어 감에 따라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밝히고, 또한 ‘심양일기(瀋洋陽의日記)’ 기록과 순수한 한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자가 오래전부터 병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밝혀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을유동궁일기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현세자가 귀국하여 1645년 2월 17일 벽제에 도착한 날부터 4월 26일 창경궁에서 사망한 날까지의 기록을 살펴보고, 비록 소현세자의 죽음이 비극적으로 보이지만 귀국 길의 노고와 진단을 질병을 잘못 치료하여 병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을유동궁일기가 소현세자의 죽음 과정과 장례절차를 보여주는 자료이면서도 오히려 소현세자의 죽음 과정을 불분명하게 한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거나 판단을 주저하고 있다. 더욱이 인조는 소현세자가 귀국한 뒤에 냉대한 일과 그의 죽음을 적장자로 대우해주지 않으려던 일,
참고 자료
- 소현세자의 죽음과 장례 절차
(나종면 / 2008 / 동방학, Vol.14, No.0)
-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사인(死因)에 관한 고찰(考察)
(김훈 / 2006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Vol.19, No.3)
- 『昭顯乙酉東宮日記』로 본 昭顯世子의 죽음
(김남윤 / 2008 / 奎章閣 第32輯)
- 소현세자는 왜 급살되었나
(신항수 / 2002 / 내일을 여는 역사 제10호)
- 소현세자 병증과 치료에 대한 연구
(김종덕 / 2007 / 奎章閣 第31輯)
- 증수무원록 언해
(서유린 등 / 1792 )
- 사상의학 체질진단 객관화에 대한 통계적 연구
(김대윤, 이재원 / 1999 / 1999년 춘계 학술발표회 논문집 vol.0)
- 심포지움 : 사상의학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 사상체질에 따른 성격 특성에서 나타나는 후천적 체질화의 영향
(김명근 / 2007 / 연차학술발표대회 논문집 wol.2007 no.0)
- 음성 신호 분석에 의한 사상 체질 분류
(조동욱 / 2006 / 한국통신학회노문지 제 31권 제5c호)
-과거의 역사 현재의 역사 ; 소현세자의 외교 활동
(김문식 / 2004 / 선비문화, Vol.4, No.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