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은 이숭인에 대한 자료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09.06.25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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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포트를 내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출처는 직접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했기 떄문에 원문출처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의 경향을 파악함에 있어서 제나름의 견해로 시기를 나눴기에 독창성도 어느정도 있습니다. 다만 시기 구분에 있어서 임의성을 가했기 때문에 시기 구분에 있어서 오류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한글이기 때문에 한문 변환에는 문제 없을겁니다.
목차
Ⅰ. 생 애
Ⅱ. 사상과 문학관
(1) 실천을 중시한 유학사상
(2) 성정지정에 근본한 문학관
Ⅲ. 이숭인의 詩의 경향
Ⅳ. 도은의 문학사적 위치
본문내용
李崇仁의 본관은 星州(성주)이다. 兒名(아명)은 夢哥(몽가)요, 자는 子安(자안)이요, 호는 陶隱(도은)이다. 고려 충숙왕 3년 성산부 용산리에서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 났다.
도은은 어머니와 조부의 교육을 통해 가치관 형성의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러한 가정환경은 윤리 의식과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16세에 國子監試(국자감시)에 합격 하여 상경 후 牧隱(목은)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고 21세에 성균관의 교관이 되어 성리학 발전에 기여했다.
29세에 典理摠郞(전리총랑)의 관직에 있으면서 금구용, 정도전 등과 함께 元의 사신을 물리칠 것을 도당에 올렸다가, 고향인 경산에 유배 되는 시련을 맞게 된다.
31세에 귀향에서 돌아와 右司議大夫(우사의대부)가 되어 동료와 함께 소를 올려 국가의 시급한 대책을 논하였다.
29세까지는 주로 成均館直講(성균관직강), 禮文應敎(예문응교), 進德博士(진덕박사) 등 학문과 밀접한 직위에 있으면서 교육자로 성리학의 발전과 보급에 기여하는 등 그의 생애 전반에 있어서 비교적 안정기로 학문의 진척이 있었던 시기이다.
31세에 귀양에서 돌아와 右司議大夫(우사의대부)가 되어 동료와 함께 「進戒疏(진계소)」을 올려 적극적으로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고자 노력하였다. 35세엔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는데 이때 「先大夫入行狀(선대부입행상)」을 지었다.
37세엔 左右衛大讓軍(좌우위대양군) 이 되어 관리 선발을 맡아 이방적을 비롯한 99명의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이로 인해 후에 喪中(상중)에 시관이 되었다하여 오사충 등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기도 하였다.
38세 때 藝文館提學(예문관제학)이 되었는데 주로 외교적인 문장을 많이 지어 명과의 사대외교에 기 여 하였다.
참고 자료
이숭인, 『陶隱先生文集(國譯)』, 1986년 이용필선생 기증본
김태준, 『조선한문학사』시인사, 1997
이가원, 『한국한문학사』 보성출판사 1986
한국역사 연구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1996
한국출판연구소, 『역대인물한국사』, 신화출판사 1979
황패강, 『한국문학작가론』, 집문당, 2000
김현주, 「도은 이숭인의 시문학 연구」 단국대 대학원, 2003
이성찬, 「도은 이숭인의 문학 연구」 공주 교육대학원, 1999
이준희, 「도은 이숭인의 시문학 연구」 성신여대 교육대학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