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 답사 보고서 - 청계천, 서울시청, 삼청동, 북촌, 인사동
- 최초 등록일
- 2009.07.16
- 최종 저작일
-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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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제: 건축이 영향을 주는 것과 건축이 영향을 주는 것, 상관관계 및 영향
직접 답사한뒤 인터넷 구석구석 검색, 책자, 신문기사 참고하여 작성한 피피티
도시계획의 배경에서 시작
역사적 사실과 장소의 변천과정, 현대적의미를 사료, 사진과 함께 기술
점수는 A+받았고 장소가 여러군데인만큼 방대한 양의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우리나라 전통도시계획 영향요인]
풍수지리
- 수도입지결정
- 백제부여, 고구려평양, 고려개성, 조선한양
- 풍수설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시작,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옴
종교의영향
- 도시의 중심지
- 신라경주의 분황사, 고려의 도시
중국의영향
- 주례 고공기의 원리에 따른 도시계획원리
- 평양, 경주, 발해상경부, 한양 등
[일제강점기 도시계획] -시구개정사업
- 1912년, 일본의 통치규범을 보이고자 실시한 도로중심 도시개조계획
(파리대개조계획을 모델로 일본은 1888년 실시)
경성에서는 31개 노선발표 : 중심가로 노폭확장과 직선화(3.1운동 여파)
- 지방도시의 시구개정은 일본인의 번영을 위해 계획(개발이익 전유)
[서울시청]
-태평로: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태평로를 건설하여 서울에 새로운 축(총독부-경성부-청-서울역-용산)을 만듬
(태평로는 일본상가인 을지로, 소공동, 거주지역인 원효로, 용산과 철도역을 연결)
조선시대 도시의 축이었던 세종로의 의미가 약화되고 전통적 모습이 변질됨
-태평로와 경성부청사 : 경성부청은 1926년 준공된 4층 높이의 건물로 지형(地形)에 따라 설계하였다.
경운궁의 경계를 서쪽으로 밀어내며 조성된 경성부청 앞 광장은 태평로와 을지로, 소공로가 만나는 요지로 지리적 중심은 물론 행정중심의 거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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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청계천]
청계천은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와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조선시대에는 청계천을 개천이라고 불렀다.
‘개천’ 이라는 말은 원래 작은 개울이나 내를 파낸다는 의미였으나, 태종 때 개천공사 이후 청계천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되었다.
청계천이라는 이름은 1916년 경부터 사용되었으며, 청계천의 상유인 ‘청풍계천’에서 유래하였다.
오늘날 청계천의 길이는 원류인 백운동에서 중랑천 합류지점까지 약 11Km이다.
개천의 너비는 상류 송기교(현재 광화문 네거리) 부근은 10m내외였으나,
장통교 부근(현재 삼일빌딩 부근)에서 남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길과 합쳐지면서 25m 내외로 넓어지고,
오간수문(현재 청계 6가 오간수교 지점) 이하의 하류는 60m이상 되었다.
-청계천의 도시공간적 의미: 궁궐과 종묘사직, 주요 관청이 모두 개천 이북에 들어서고
이남으로는 중하층 민가지대가 들어서
개천을 기준으로 상하 이원적인 공간 질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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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