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궁궐
- 최초 등록일
- 2009.09.20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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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궁궐(건축물)을 연구
목차
옛지도로 본 한성
궁궐의 배치
궁궐이란
조선시대 궁궐 건축양식
경복궁
궁궐용어
본문내용
《순조실록》에 의하면, 1830년(순조 30) 8월에 창경궁 환경전(歡慶殿)이 불탔다 하였는데, 이 그림에는 환경전이 그려져 있어 1830년 이전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궁궐지에는 창덕궁 후원 내의 연경당(演慶堂)이 1828년(순조 28)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배치도에는 연경당이 없다. 궁궐지에 창덕궁 경복전(景福殿)이 1824년(순조 24)에 소실되었다고 하였는데, 이 그림에는 경복전기(景福殿基)로 불탄 자리만 그려져 있다.
따라서 동궐도는 1824년 경복전이 소실된 후부터 1828년 연경당이 건립되기 이전까지의 기간 중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궁의 옛 모습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왕궁의 건물 배치나 조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3.2. 1902년 궁궐의 모습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고종이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고 궁을 비운 지 6년이 지난 무렵이다. 1867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했을 때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4. 조선의 궁궐-경복궁(景福宮)
경복궁은 1392년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에 의해 세워진(만들어진) 첫 궁궐이다.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서 개국공신 정도전으로 하여금 <시경(詩經)> 주아편의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에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궁궐의 이름을 경복(景福)이라 정하게 했다고 한다.
한때, 이방원 (태조의 5번째 아들 - 후에 태종)주도의 왕자의 난으로 조선 2대왕 정종(태조 2째 아들) 등극 및 정종의 개경환도로 잠시 경복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으나, 3대 태종의 한양 재환도와 4대 세종의 즉위를 기점으로 법궁으로 써 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3대 임금인 태종의 한양환도 때에 또 다른 궁궐인 창덕궁이 제2의 궁궐로 창건되어 궁궐이 2개로 늘어났으며, 그 후 9대 성종 조에 이르러 창경궁이 중건되니 궁궐의 수가 3개로 늘어나게 된다.
참고 자료
우리 궁궐 이야기 - 홍순민, 청년사, 2005.
우리 옛 지도와 그 아름다움 - 한영우 외, 효형출판, 1999
한국의 건축과 예술 - 강봉진, 산업도서출판공사, 1990
우리궁궐길라잡이 - 한국청년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