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궁궐 (조선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 최초 등록일
- 2009.09.24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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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궁궐에 관련된 용어, 용도, 공간구조 등의 간략한 소개와
서울의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에 관한
간략한 역사적 설명, 주요 건물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궁궐이란
1. 궁궐과 관련된 용어
2. 궁궐이란
3. 궁궐의 성격 및 용도에 따른 구분
4. 궁궐의 공간구조
5.궁궐의 건물이름으로 본 신분
6. 궁궐의 위치
Ⅱ. 조선 5대 궁궐
1. 경복궁
(광화문 근정전 사정전 경회루 강녕정 교태전 동궁)
2. 창덕궁
(돈화문 궐내사각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
3. 창경궁
(홍화문 명정전 문정전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춘당지)
4. 경운궁
(대한문 중화전 준명당 즉조당 석어당 함녕전 정관헌 석조전)
5. 경희궁
(흥화문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황학정)
본문내용
1. 경복궁(景福宮)
1) 경복궁의 역사
경복궁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에 의해 세워진 조선의 첫 궁궐로, 조선의 첫 궁궐이자 법궁이었다. 새 궁궐을 완공하고 베푼 연회에서 개국공신 정도전에 의해 ‘경복궁’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경복’이란 ‘임금님의 큰 은혜와 어진 정치로 모든 백성들이 아무 걱정 없이 잘 살아간다’ 는 뜻으로, <시경> 주아편의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에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 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조선초 경복궁은 외형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법궁으로의 위치에 서지는 못했다. 조선 초 정치적 혼란기에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등극한 뒤 시행한 개경환도로 인해 경복궁은 방치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태종이 한성재환도를 한 뒤, 경회루를 조성하고 궁궐을 정비하여 이궁인 창덕궁에서 옮겨오면서 법궁으로서의 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태종 대에 정비된 경복궁은 궁전과 행랑만으로 된 완전하지 못한 궁궐이었으나, 세종 대에 보완과 신축으로 전궁과 후궁이 완비되어, 조선의 법궁 경복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명종8년(1553)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들 중 경회루와 청연루 등 몇 채만 남기고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불로 번졌으나 그 이듬해 대부분 복구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거의 전소되어 경복궁은 초토화되고만다. 경복궁에 불을 지른 주체로는 우리 백성들이라는 기록과 왜군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왜군들이 불을 질렀다는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다.
임진왜란 후 창덕궁, 창경궁은 복구되나 경복궁은 이후 273년 동안 재건되지 못하고 빈 터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고종2년(1865)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여타 궁궐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의 중건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는 고종 4년에 완공되어, 고종 5년에 고종이 경복궁에 입거하면서 법궁으로서의 지위를 되찾는다.
그러나 경복궁은 그 후에도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가 을미사변이라는 비극을 맞은 뒤, 고종이 아관파천 후 경운궁(덕수궁)에서 기거하게 되면서 또다시 그 빛을 잃게 된다.
참고 자료
新궁궐기행 / 이덕수 / 대원사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 송용진 / 두리미디어
정겨운 韓國의 얼굴 - 우리 궁궐 산책 / 윤돌 / 이비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