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근대건축 운동 : 수공예에서 기계로
- 최초 등록일
- 2009.10.26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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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의 근대건축 운동입니다. 독일의 근대건축운동은 범위가 넓어서 한두강의로 끝나지 않을것 같아 리포트가 나뉠것 같습니다.
목차
1. 독일 공작 연맹
1)독일공작연맹의 성립
2) 기술인가 예술인가
3) 피터 베렌스와 앙리 반 데 벨데
4) 기술과 예술의 통합
5)발터 그로피우스와 공작연맹의 건축가
본문내용
수공업으로부터 기계공업으로 산업구조가 바뀌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예분야도 19세기말의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공예품을 기계로 대량생산한 결과 품질과 취미의 조약화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19898년에는 <뮨헨 공방>과 <드레스덴 공방>이 설립되었다. <뮨헨 공방>은 기계생산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능성을 열심히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기계생산의 적극적인 도입에 의해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친 시대는 기계가 일상생활 속으로 침투한 시대였다. 기계테크놀로지가 생활을 뒤덥기 시작한 기계미학의 시대 그것을 발터 벤야민은 <복제기술>의 시대로 이해하려 하였다. 그리고 이시대에는 테크놀로지를 배경으로하여 새로운 환경을 창출한다고 하는 발상이 확산되어지며 이 기계미학의 시대에 모던 디자인이 확실하게 그 이론과 형식을 정리해 갔다. 한 예로 1919년에 바우하우스에 의한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바우하우스는 기계의 논리를 디자인의 논리에 반영시켜 소위 기계적인 합리주의, 즉 기능주의 디자인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또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테크놀로지에 의해 새로운 환경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디자이너들은 가정에 침투되기 시작한 부품이 모두 드러난 기계류에 깔끔한 외관을 디자인해 줌으로써 사람들이 기계와 친숙해지도록 하였다. 이탈리아의 미래파는 기계의 속도에 매혹되어 있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파시즘, 사회주의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기계적인 테크놀로지를 전제로 한 사회환경의 미래상을 둘러싸고 상호간에 투쟁하게 된다. 그 결과 이데올리기 투쟁은 디자인의 투쟁으로 전개된다.
참고 자료
서양 근대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