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변혁기의 재변화
- 최초 등록일
- 2009.10.26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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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당송변혁기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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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 태종 이세민은 고창국과 비단길일대를 장악하고 돌궐을 정복하여 당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또한 조세제도와 토지제도,군사제도도 정비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뤄져 당나라 시대의 율령 체제가 완성되었다. 태종의 이러한 치세를 두고 정관의 치라고 부른다. 당나라는 이후 잠시 쇠퇴 하였다가 현종이 즉위하자 당나라는 다시 전성기를 누리는 데 이를 개원의 치라고 한다. 이 시기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경교)가 불교와 더불어 꽃을 피울 정도로 문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현종은 안으로는 민생안정을 꾀하고 조운 개량과 둔전 개발 등으로 경제를 충실히 하였으며, 부병제의 붕괴에 대처하여 신병제를 정비하여 다시 나라를 일으켰다. 또한 밖으로는 동돌궐,토번),거란 등의 국경지대 방비를 튼튼히 하여,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구가하였다.
현종 재위 말기부터 귀족들의 장원토지가 증가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755년에는 안·사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통치력을 매우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이 되었다. 결국 당나라는 조세 제도는 양세법,군사 제도는 모병제로 바꾸었다. 수 많은 반란 속에서 절도사세력이 성장하였고 중앙정부에서는 환관과 외척들이 권력다툼을 벌였다. 결국 황소의 난을 거쳐 당나라는 절도사인 주전충에게 멸망하였다.
송은 BC 2세기 무렵~BC 286년에 있던 춘추 12제후국의 하나다. 주 초기 성왕 때 상 주왕의 서형인 미자계가 상의 유민을 다스리기 위해 옛 도읍인 허난성의 상추현에 봉건된 데서 비롯된다. 상 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송은 춘추시대에는 정·위와 나란히 중원의 큰 세력으로 활약하다가 제·진·초의 세력이 강해지자 그 틈바구니에 끼여 전란을 거듭하였다.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인 제의 환공이 죽어 각국이 중심세력을 잃자 송나라 양공은 환공의 패권을 계승하려고 하였으나, BC 638년 홍수 싸움에서 초에게 패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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