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의 신하 박제상
- 최초 등록일
- 2009.11.10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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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박제상의 내력
2. 내물왕과 김제상(박제상)
3. 치술령의 망부석
4. 박제상의 아들 - 백결선생
본문내용
1. 내력
박제상(朴堤上, 363년~419년경)은 신라의 정치가이며 충신이다. 자는 중운(仲雲), 호는 관설당(觀雪堂)․도원(挑園)․석당(石堂) 등이다. 박혁거세 거서간의 9세손이며 영해 박씨(寧海朴氏)의 시조이다. 《삼국유사》는 김제상(金堤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는 박물품(朴物品), 할아버지는 갈문왕 박아도, 지마 이사금의 손자로 휘하로 아들 박효원, 박문량, 딸로 박씨로 미사흔처가 있다.
2. 내물왕과 김제상(박제상)
눌지왕 10년 을축(乙丑)에 왕이 여러 신하들과 나라 안의 호걸 협객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세 순배 돌자 음악이 울려 나오는데, 왕이 눈물을 흘리며 여러 신하들에게
"이전에 부왕(내물왕)께서 진정으로 나라일을 생각하여 사랑하는 아들(미해)를 왜국에 보냈는데, 그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소. 또 내가 왕위에 오른 이후로 이웃 나라 군사들이 매우 강성해져서 전쟁이 쉴 사이 없었는데, 고구려가 화친을 맺자고 하므로 내가 그 말을 믿고 아우(보해)를 고구려에 보냈더니 고구려가 또한 그를 잡아 두고 돌려 보내지 않는구려. 내가 비록 부귀를 누린다고 하나 일찍이 하루도 아우들을 잃어 버리고 울지 않은 날이 없었소. 만일 두 아우를 다시 만나게 되어 함께 선황의 사당에 참례라도 하게 된다면, 나라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을 터이니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입을 모아 아뢰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혜와 용맹을 겸한 사람이라야만 될 것입니다. 신들의 생각으로 삽라군 태수인 제상이 어떨까 합니다."
이에 왕은 제상을 불러 그 의향을 물으니, 제상이 두 번 절하고 대답하기를,
"제가 들으니 `임금이 걱정을 하면 신하는 욕을 당해야 하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만일, 어려운 일과 쉬운 일을 가려 한다면 충성스럽지 못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비록 변변치 못하오나 명을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잔을 나누어 술을 마시고 손을 맞잡고 작별하였다.
제상은 곧바로 가 변장을 하고 고구려에 들어갔다. 보해(寶海)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도망할 날짜를 약속하고 먼저 고성(高城) 포구에 돌아와서 기다렸다. 약속한 날이 나가오자 보해는 병을 핑계로 며칠 동안 조회(朝會)에 나가지 않다가, 밤중에 도망해서 고성 바닷가에 이르렀다. 고구려 왕이 이것을 알고 수십 명을 뒤쫓아 고성에서 따라잡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