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리히터
- 최초 등록일
- 2009.11.19
- 최종 저작일
- 2009.06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목차
Ⅰ. 서론
-생애와 시대적 배경
Ⅱ. 본론
-작품세계
사진적요소
추상화시리즈
회색의 모노크롬
Ⅲ. 결론
-의의 및 생각
본문내용
Ⅰ. 서론: 생애와 시대적 배경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회화의 새로운 획을 그은 현대미술의 거장.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그리고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1932년 옛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이미 10대 후반에 무대와 빌보드(1948~1951)의 페인팅을 제작하는 상업적인 기술을 습득하였다. 1951년 드레스덴의 Kunstakademie에서 전통적인 교육과정을 수학(1951~56)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레나토 거스투소(Renato Gusttuso)의 작업에 정통하였으며, 제도자(Drafstman)로서 그리고 사실주의 화가로서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1959년 리히터는 화가로서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다름 아닌 독일의 카셀에서 개최된 ‘국제 아트 페어 다큐멘타 2(Documenta 2)’를 관람하면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잭슨폴록(Jackson Pollock) 그리고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작업에 깊은 인상과 충격을 받는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추상 표현주의와 팝 아트가 한창 미술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의 작업들로 리히터는 자연스럽게 세계미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동시에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이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것은 곧 ‘프롤레타리아 집단이라는 명명 아래 지배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였다’고 리히터는 말했으며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포기는 것이며, 동시에 예술이 어떤 행위나 목적을 위해 고용되어질 때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사라진다는 리히터의 예술적 의지와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1960년 리히터는 서독의 뒤셀도르프(Dussel-dorf)로 이주한 후 칼 오토 고츠(Karl Otto Gotz)로부터 추상 표현주의를 접하게 되고 이곳에서 피셔-루엑(Konard Fischer-Lueg), 폴케(Sigmar Polke) 등과 교우하며 플럭서스(Fluxus)와 팝 아트의 영향으로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또한 `자본주의 사실주의(Capitalist Realism)`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자본주의 사실주의`란 동독의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대한 대응
참고 자료
- 라루스 서양미술사 현대미술, Jean-Louis Pradel
- 현대미술의 풍경, 윤난지
- 월간사진 2005년 6월호
- 예술의 종말 이후, 아서단토
- 20세기 추상미술의 역사, 안나 모진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