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중세시대, 러시아의 이콘, 러시아정교와 사상, 제3로마이론
- 최초 등록일
- 2009.11.20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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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러시아 중세시대와 러시아 정교의 역사, 러시아 정교와 사상, 제 3로마이론, 그리고 이콘까지 다방면에 걸쳐 필요한 자료만 뽑아 정리해논 요약집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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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콘
목차
1. 러시아 중세시대
2. 러시아 정교의 역사
3. 러시아 정교와 사상
4. 제 3로마이론
5. 이콘
본문내용
8~9세기 오면서 이콘에 대한 논쟁이 확산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문제였다. 그리스도가 신이면 어떻게 가시화 될 수 있는가? 묘사되면 신의 속성이 아니다. 라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콘 파괴주의자의 입장과 그리스도는 신성+인성. 그리스도가 보이는 것처럼, 이콘도 그리스도처럼 신성 합일의 상징. 이미지 뒤에 초월적 실재 존재한다는 찬성론자의 입장이 대립하였다. 파괴주의자들은 파괴주의를 주창하면서 교회에 대한 세력 우위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황제도 이존을 탄압하며,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그리스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콘 논쟁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726년 레오 3세 그리스도형상 십자가를 떼어냄. `이콘 존숭` 공식 탄압.
754년 콘스탄틴 5세 `이콘 존숭` 탄핵하는 종교회의 소집하고, 네스토리우스파, 단성론자 견해 근거로 존숭론자 탄압.
레오 4세, 콘스탄틴 6세 : `이콘 존숭` 부활. 787년 니케아 공의회 승인. 숭배가 아닌 찬미의 대상임을 천명.
레오 5세 : `이콘 존숭` 금지
미카엘 3세(843년) `이콘 존숭` 인정.
이콘의 신학적 요소
이콘의 신학적 요소는 754년 다마스쿠스의 요한 이콘을 ‘불문의 성서’로 정의하였고, 또한 신인의 속성을 반영한 상징물. 신의 계시를 표의적 상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서구의 ‘소리 중심주의’와는 다르게 정교의 문화는 ‘시각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콘 논쟁이 종식되고, 이제 이콘은 가시적 이미지 외에도, 비가시적인 신성 형상의 현전의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즉 신의 예지와 말씀을 보이게 하는 시각적 상징물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 중심의 비잔틴 문화는 러시아 정교의 시각적 특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