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대부
- 최초 등록일
- 2009.12.04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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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중세사
신흥사대부에 대하여
목차
1. 들어가는 글
2. 본론
(1) 신흥사대부의 개혁
(1)-1. 신흥사대부의 용어와 대두시기
(1)-2. 신흥사대부의 성격
(1)-3. 과거제도의 개혁
(1)-4. 토지개혁
(2) 신흥사대부의 집권과정
(2)-1. 이성계의 등장
(2)-2. 최영 vs 이성계
(2)-3. 위화도회군
(2)-4. 위화도회군 이후의 결과
(2)-5. 고려왕조의 종언
3. 나오는 글
본문내용
고려후기사회를 이끌어간 정치적 사회적 지배세력은 보통 世族 ․ 權門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무신정권기에서부터 원 간섭기를 지나면서 고려후기사회를 주도하며 권력을 누적, 합법적 ․ 불법적인 경로로 대토지를 소유함으로써 토지지배체제의 모순을 극대화시켜 고려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개혁이라 할 수 있는 恭愍王의 개혁이 왕이 시해되며 물거품이 됨으로써 고려는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권문세족과 대조되며 새롭게 대두하는 세력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新興士大夫들이다. 그들은 恭愍王의 개혁에 일조하며 그 세를 키우고, 위화도회군으로 권력을 잡은 후에 결국 개혁을 성공시켜 麗末에서 鮮初로 이행하는 易姓革命까지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내용에서는 신흥사대부가 어떤 계층과 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그들이 세를 키우고 권력을 잡는 과정과 그들이 행한 개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 신흥사대부의 개혁
(1)-1. 신흥사대부의 용어와 대두시기
고려 후기에는 당시의 지배계층인 권문세족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일군의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新興士大夫’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들은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관료의 모태가 되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高麗末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주체가 되어 고려사회의 모순을 개혁하고 역성혁명을 이끌어갔던 이들이 행했던 개혁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신흥사대부’라는 용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新興’이라는 말은 한자의 풀이를 하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새롭게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士大夫’라는 말속에 독특한 의미가 담겨 있다. 조선 후기에 박지원은『燕巖集』에서 독서하는 계층을 ‘士’라고 하고 정치를 수행하는 계층을 ‘大夫’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사대부는 독서하면서 정치를 하는 계층을 의미하므로 이들은 학자적 관료이며 관료적 학자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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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운,「제5장 고려후기 세족과 권문과 신진사류의 사회-Ⅰ. 후기 세족 ․ 권문과 신진사류 사회의 정치적 변화」,「제5장 고려후기 세족과 권문과 신진사류의 사회-Ⅱ. 후기 세족 ․ 권문과 신진사류사회의 경제와 사회 변화」, 「제5장 고려후기 세족과 권문과 신진사류의사회-Ⅴ. 고려왕조의 몰락」,『고려시대사』, 도서출판 일지사, 2008년 수정 증보판
․ 허흥식,「Ⅰ. 高麗 科擧制度의 成立과 發展- 3. 高麗末 科擧制度의 改革」,『高麗科擧制度史硏究』, 도서출판 일조각 , 1981
․ 김재근 外,「Ⅰ. 토지제도와 농업-1. 토지제도(과전법체제의 확립 13pp~61pp)」,『한국사24-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국사편찬위원회 ,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