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북한식 신사고와 종자론
“종자론을 튼튼히 틀어 쥐고 나가자”(2001.3.6)
목차
Ⅰ. 서언
Ⅱ. 종자론의 기원과 변화
1. 종자론의 기원
2. 종자론의 변화
Ⅲ. 북한식 신사고의 등장배경과 내용
1. 등장배경
2. 내용
Ⅳ. 문헌 분석 - 종자론을 튼튼히 틀어 쥐고 나가자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언
2001년 3월 6일의 로동신문 논설인 본 문건은 기존에 문학예술분야에서 주로 사용된 ‘종자론’ 개념을 모든 분야로 확장하여 그것을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자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2년 발간된 『문학예술사전』에 수록된 ‘종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1973년 4월 발표된 김정일의 영화예술론에서 처음으로 김정일에 의해 ‘종자’의 개념이 제시되면서 주로 문학예술분야에서 작품의 핵으로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그 ‘사상적 알맹이’가 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처럼 문학예술분야에서 주로 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서 창작지도이론으로 역할을 해 왔으며,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에 대한 하나의 사상적 지도지침으로 작동해 왔다. 손종업, “종자이론과 북한 문예이론의 특징”, 어문학회 제35집(중앙어문학회, 2006), 194쪽.
이러한 경향은 북한에서 1990년대까지 찾아 볼 수 있다. 1973년 영화예술론을 시작으로 1990년대 초반에 발표된 무용예술론, 건축예술론, 음악예술론, 미술론, 주체문학론에 이르기까지 주로 문학예술분야에 한정해서 ‘종자론’이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재등장한 ‘종자론’은 기존의 문학예술분야에서의 창작이론으로써의 ‘종자론’을 더욱 확장한 개념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2001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농업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 당이 제시한 종자론을 철저히 구현하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후 그 의미와 개념이 문학예술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자론’의 변화는 본격적으로 김정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김정일이 창조한 독창적인 사상임을 강조(새 시대의 새로운 사업방식)와 동시에 소위 ‘북한식 신사고’ 북한은 공식적으로 ‘신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은 없다.
참고 자료
권영민, “북한의 문학 50년”, 『북한문화연구』 제3집(한국문화정책개발원, 1995)
김정일, 『김정일 선집』3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4)
서재진, “북한 ‘신사고론’의 의도 및 내용분석”, 『통일정세분석』2001-1(통일연구원, 2001)
손종업, “종자이론과 북한 문예이론의 특징”, 어문학회 제35집(중앙어문학회, 2006)
이기동, “북한의 ‘신사고’, ‘선군정치’ 그리고 정책변화”, 『통일정책연구』 제10권 1호(통일연구원, 2001)
이우영, “북한의 사회주의문화 건설과 문화정책”, 『역사문제연구』제 13호(역사문제연구소, 2004)
『문학예술사전Ⅱ』(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2),
「로동신문」, 「근로자」 공동론설, “과학중시사상을 틀어쥐고 강대국을 건설하자”, 200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