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세사 교육
- 최초 등록일
- 2009.12.08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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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교육 수업에서 발표해서 좋은 성적을 받은 레포트 입니다.
목차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1)인조반정
2)인조반정, 반정의 주체 그리고 명분
3)인조반정, 그들의 모순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1) 병자호란의 배경
2) 병자호란의 전개
3) 병자호란의 결과
4) 병자호란이 남긴 교훈
본문내용
500년 역사의 조선 왕조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쫓겨나 불행한 삶을 마감했던 왕이 3명있다. 어린 나이에 즉위 했다가 숙부 수양대군에게 쫓겨났던 노산군(단종), 포학하고 방탕했다는 이유로 중종반정을 만나 쫓겨났던 연산군, 그리고 이 글에서 논증해보고자 하는 인조반정과 광해군이 그들이다.
17세기 조선은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만큼, 큰 위기를 맞게 된다. 7년 동안 이어진 임진왜란으로 인해 나라는 피폐해졌고 민심은 흉흉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붕당의 조짐으로 어지러웠고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는 형국이었다. 밖으로는 명이 쇠퇴해가고 북방에서 여진의 후금이 강성해지며 국제 관계 또한 급변해갔다. 이시기의 군주가 바로 광해군이다. 그는 왜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어루만지고 무너져버린 국가의 기반을 재건해야했다. 실제로 그는 여러 개혁정책을 펼치려 하였고 왕권강화를 단행해 왕권의 기반을 다지려고 하였다. 그리고 국제 관계에 있어서 오늘날 ‘양면외교’, ‘실리외교’라 일컬어지는 명과 후금사이의 외교 정책으로 조선사회의 안정을 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1623년 서인등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인해 역사의 혼군으로 격하되며 패배자가 되고 만다.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이미 ‘반정’이라는 단어 속에 원초적으로 담겨있다. 반정(反正)은 『춘추』공양전이나 『사기』고조기 등에 보이는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바른 세상으로 돌이킨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따라서 ‘반정’은 올바른 상태로의 복귀를 말한다. 인조반정이 성공했던 직후, 쿠데타를 주도했던 서인이나 그에 동조했던 남인들은 반정이 성공한 것을 일으켜 ‘나라를 다시 세운 경사(再造之慶)’라고 극찬하고 “윤리가 다시 맑아졌다”고 평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인조반정을 성공했던 그들은 그들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광해군일기』를 비롯한 광해군대의 역사를 담은 사서의 내용을 상당 부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찬했을 것이다. 따라서 광해군과 그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어려움도 상당부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참고 자료
- 정약용, 정해렴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현대실학사 / 2001
- 한명기. 『현명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광해군』. 2000. 역사비평사.
- 한국사 29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