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1930년대 기교주의 논쟁
-김기림, 임화, 박용철을 중심으로-
목차
1. 서론
2.0.기교주의 논쟁의 밑거름
2.1. 낭만주의 의식의 정초
2.2. <현대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 (1935. 2), 김기림
2.3. <시대적 고민의 심각한 축도> (조선일보 1935. 8. 29), 김기림
3.0 기교주의 논쟁의 양상
3.1. <담천하의 시단 1년> (신동아 1935. 12), 임화
3.2. <을해시단총평> (동아일보. 1935. 12.25-27), 박용철
3.3. <시인으로서의 현실에의 적극 관심> (1936. 1), 김기림
3.4. 기교파와 조선시단 (『중앙』 28호, 1936. 2), 임화
3.5. <기교주의 설의 허망:기술의 문제> (동아일보, 1936. 3.18-25), 박용철
3.6. <진보적 시가의 작금> (『풍림』 제 2집, 1937.1), 임화
4.0 결론
5.0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의 시단은 1930년대에 진입하여, 1920년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여러 층위의 시적 경향 안에 놓이게 된다. 특히 동인지를 중심으로 시단의 영역을 구축한 낭만주의와, 1920년대 중반의 대변혁인 사회주의 사상의 이념을 구체화시키는 프로시가 1920년대의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낭만주의의 극단적 주정주의와 프로시의 ‘예술의 도구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모더니즘의 사조가 큰 물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세 가지 시단의 조류는 추구하는 바와 지향성이 상충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학가들의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당대 비평과 창작 면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던 임화와 김기림의 논쟁은 ‘기교주의 논쟁’이라는 명제아래, 시와 예술에 대한 지향점과 그 참의미를 추구해나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논쟁의 당사자들인 김기림, 임화, 박용철이 자신의 시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 논쟁을 계기로 시에 대한 관점과 이론을 체계화하고, 한국 근대시론의 전개과정에서 소위 모더니즘 시론, 리얼리즘 시론, 유미주의 시론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이후 현대시론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였다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기교주의 논쟁은 김기림의 <현대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조선일보 1935 2 10-14)에서 촉발되고 임화의 <담천하의 시단 1년>(신동아, 1935. 12)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1935년을 기점으로만 임화와 김기림의 시적 경향에 대한 대립각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고, 그 전에도 이러한 입장차는 존재하였다.
참고 자료
심선옥, 기교주의 논쟁을 통해 본 1930년대 시에서 근대성의 탐구, 어문연구학회, 1989.
오형엽, 1930년대 기교주의 논쟁 연구, 수원대학교, 2005.
정순진, 모더니즘 시론과 리얼리즘 시론의 접맥-기교주의 논쟁을 중심으로-, 수원대학교 국어국문학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