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석불사(석굴암)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2.04.21
- 최종 저작일
-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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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삼국유사중 석불사 부분
2. 석굴의 형식으로 사원을 조성한 이유
3.1 본존불
3.2 십일면관음보살
3.3 범천과 제석천상
3.4 금강역사상
3.5 문수보살
3.5 팔부신중
3.6 사천왕상
3.7 십대제자
3.8 미륵보살
3.9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
3.10 관음보살
3.11 유마상
4.석불사의 건축구조와 비례관계
5. 보수연역
6. 감상
7. 참고문헌과 인터넷 주소
본문내용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중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 에는 석불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31대 신문왕이 즉위한 신사년은 당 고종 개요 원년이다. 나라에 효성이 지극한 아이가 있었는데, 이름은 김대성이라 한다.
모량리에 사는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가 그의 어머니이다. 그는 신문왕 즉위 2년인 임오년에 태어났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편편하니 성(城)과 같았다. 그런 까닭에 대성(大城)이라 이름지었다.
본래 가난해서 복안(福安)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밭 몇 마지기를 얻어서 의식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 때 점개(漸開)라는 중이 있었다.
그는 육륜회(六輪會)를 흥륜사에서 베풀려고 보시(布施)를 받고자 복안의 집에 갔다가 베 50필을 얻었다. 중이 축원하여 말하기를 “시주하기를 좋아하면 늘 천신이 돌보아줄 것이며, 하나를 베풀어 그 만 배를 얻게 되니 수명 장수하고 안락을 누리게 될 것이오 (檀越好布施 天神常護持 施一得萬倍 安樂壽命長)”라고 했다 대성은 이 말을 듣고 집으로 뛰어들어와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제가 스님이 외는 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그럴 듯 했습니다.
참고 자료
요네다 미요지 불국사의 조영계획
신영훈. 한국상대건축의 연구. 한국문화사. 1963년
일연. 삼국유사
이기영. 석굴암. 일지사. 1974.6.20
문명대. 석굴암 불상조각의 연구. 박사학위 논문. 1987년
www.bora.net/~jhs76
www.naver.com (사진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