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지역의 역사유적
- 최초 등록일
- 2010.02.21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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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위치하고 있는 문화유적을 소개한다.
목차
1. 월계동 일대
◆월계동 각심재 (月溪洞 恪心齋)
◆이명신도비(李蓂神道碑)
◆초안산 조선시대분묘군(楚安山 朝鮮時代墳墓群)
2. 중계동 일대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鶴到庵 磨崖觀音菩薩坐像)
◆한글고비
◆충숙이공신도비
※이상길
◆충숙이공영정
3. 수락산 보루
본문내용
노원구 지역은 현재 ‘노원(蘆原)’ 또는 ‘마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노원`이라는 명칭은 지금까지 밝혀진 문헌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부터 시작되며, 그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원`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노원지역이 우리 역사에 등장하게 된 요인은 이 지역이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교통로였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도읍지인 한양과 근접한 지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북쪽지역인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는 첫 관문이었기 때문에 그 중요도가 더욱 강조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기원전 신석기 ․ 청동기 시대에 이 지역에 주민들이 정착하여 살았으리라 추정되는 토기 등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대 삼국이 한강유역을 놓고 각축전을 벌일 때에는 먼저 백제의 영역이 되었고, 이어 고구려군의 남하와 신라의 통일 등으로 노원지역을 포함한 서울 동북지역(경기도 의정부시 및 양주군 등지 포함)은 삼국의 첨예한 격전지였다. 고려 ․ 조선시대에는 교통로를 따라 그 요지에 역원을 설치하여 교통과 숙박의 편의를 제공하였는데, 노원지역도 역원이 설치되면서부터 역사 무대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일반적으로 지명은 주변의 모습이 한자화하여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갈대만 무성히 자란 벌판의 모습을 보고 `노원`(蘆 : 갈대 노, 原 : 벌판 원)이라고 지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기록에도 지역명인 `노원`이 단독으로 표기되기보다는 지역명과 역이 합쳐져서 `노원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면은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여러 기능 가운데 역(驛)의 기능이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원지역을 `마들평야`라고 부르고 있다. 이 이름은 문헌기록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민간에서 사용되어 왔다. 그동안 갈대만이 무성하던 벌판에 역원이 생기고 정식으로 `노원`이라고 불리게 되면서 점차 이 들판의 여러 곳에 역원에 필요한 역마(驛馬)를 놓아 키우게 되었다. 한자 지명인 `노원`에 익숙치 못했던 사람들은 들판에 말들이 자라고 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차츰 이 들판을 `마들평야`라고 부르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