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시대의 다문화 현장 - 이태원 이슬람사원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0.03.07
- 최종 저작일
- 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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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태원 이슬람사원을 중심으로 세계화시대의 다문화 현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리과의 답사 최종자료이며 포함된 내용은 다문화에 대한 정의, 이태원의 변천, 다문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 서울중앙서원(이슬람사원), 이태원의 사진자료 등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이태원
1. 이태원의 시대적 변천
2. 다문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
Ⅲ. 서울 중앙 성원
Ⅳ. 답사를 통해 알게 된 것
1. 다문화 공간의 상징으로의 이태원.
2. 이태원 이슬람사원에 대한 장소감(한국인과 무슬림을 중심으로).
3. 서울 중앙 성원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이슬람권 사람들과 그 공동체의 모습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다문화 사회란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괄하는 사회를 말한다. 좀 더 넓은 개념으로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괄하면서 그 개개의 민족과 문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말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이주 노동자의 유입, 결혼 이주민의 증가, 다국적 기업과 교육 분야의 기술전문 인력의 증가 추세로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세계화에 수반되는 인적 교류와 접촉의 증가로 인해 충돌과 갈등의 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변화를 위한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그 중요함이 결코 적지 않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는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가 경험해 온 현상이며 앞으로 더욱 촉진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러한 세계적 현상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
이에 우리는 이태원의 서울 중앙 성원을 중심으로 다문화현장에 대해서 알아보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 해보고자 한다.
Ⅱ. 이태원
1. 이태원의 시대적 변천
이태원의 외국인 거주 역사는 고려 시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때 귀화한 거란족이나 조선 초에 역시 귀화한 여진족이 이태원에 모여 살면서 차를 재배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에 이태원은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기도 하고 후에 귀화한 일본인들도 살았다. 임오군란(1882년)에는 청나라 군사가 주둔하기도 했다. 일제강점을 전후로 이태원은 일본의 병영기지가 되어 수만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과거부터 외국인들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기에 ‘이타인’(異他人), ‘이태원’(異胎院)이란 땅이름을 낳았고 ‘이태원’이라 불렀다.
한편 해방이후에는 미군이 일본군 사령부를 접수하면서 이태원은 작은 미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걸프전과 9.11사태, 미군기지 이전 등으로 인해 미군은 감축추세에 있다.
참고 자료
- 김은실, 2004, 지구화 시대 근대의 탈영토화된 공간으로서 이태원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 한국여성연구원 편, 푸른사상
- 이희수, 2008, 서울 이태원동 일대의 이슬람 타운화 과정에 대한 연구,
한국이슬람학회논총
- 송도영, 2007, 종교와 음식을 통한 도시공간의 문화적 네트워크: 이태원 지역
이슬람 음식점들의 사례,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 한국이슬람교중앙회, http://www.koreaislam.org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 중앙일보, http://patzzi.joins.com/article_html/38528.html?aid=38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