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에 나타난 구경적 삶의 형식
- 최초 등록일
- 2010.03.18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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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동리의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를 통한
구경적 삶의 형식에 대한 고찰
목차
없음
본문내용
(上)
소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문학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기대로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우리는 보통 「생활을 위한 문학」이니 「문학을 위한 문학」이니, 혹은 「인생을 위한 문학」이니 「예술을 위한 문학」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을 흔히 듣는다. 이렇게들 문학의 기능이나 성격에 대하여 자기류의 해석이나 주장을 붙이는 사람들까지 또 「문학하는 것」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괴이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떠한 문학이라도 좋다. 그것이 문학인 이상, 그리고 또 자기가 문학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 「문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시나 소설(혹은 희곡이나 평론) 쓰는 것을 가르쳐 문학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면, 시 쓰고 소설 쓴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시나 소설의 의의를 사전이나 문학개론 같은데서 배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개 참고 재료는 될지언정, 전적 해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 쓰고 소설 쓰는 사람은 시 쓰고 소설 쓰는 것이 무엇인지를 각자대로 한번씩 생각해보고, 자기대로의 해답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논의점
* 김동리는 출발부터 자신의 선, 세계가 확고했으며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자신의 신념이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다는 것 김윤식, ‘구경적 삶의 형식’의 문학관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
이라는 주장이 있다. 김동리의 신념이 변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구경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삶에 참여하지 않고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보았기에 그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에서 말하는 인생의 가장 높은 단계인 구求경竟적 삶의 요점은 `참여` 인 듯싶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우리의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타개에 노력하는 것, 이것을 가리켜 구경적 삶이라 부르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타개에 대한 노력은 방관자로만 있어서는 완수할 수 없는 과제인데 그는 구경적 삶의 우월성을 주장하지만 우리의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타개에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구경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 김동리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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