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기회를 꿈꾸던 비운의 왕세자 - 소현세자
- 최초 등록일
- 2010.03.25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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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개혁의 기회를 꿈꾸던 비운의 왕세자 - 소현세자
(논문형식으로 작성)
목차
Ⅰ 머리말
Ⅱ 시대적 배경
Ⅲ. 심양에서의 활동
1. 외교활동
2. 서양 문물의 견학
Ⅳ 소현세자의 귀국
1. 소현세자와 인조의 갈등
2. 소현세자의 죽음
3. 소현세자 죽음을 둘러싼 의혹
Ⅴ 맺음말
본문내용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그리고 삼전도 치욕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도, 그 뒤에 존재하는 소현세자와 그 일가의 비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만큼 소현세자는 잊혀진 인물이다. 그가 만약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면 이후 조선의 운명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조선은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는데 소현세자는 이런 국제 정세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인물이었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과학 기술로 조선을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은 그는 조선으로 귀국한지 두 달 만에 그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와 함께 조선의 꿈도 좌절되었다. 이때 이미 낡아빠진 성리학을 버리고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면 그 처참했던 근대사의 아픔은 겪지 않아도 좋았을지도 모르는 소현세자의 안타까운 행방과 소현세자를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
Ⅱ 시대적 배경
국내적으로는 임란이라는 오랜 전란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사상적, 정치적 입장 차이에 기인한 정쟁이 이어져 결국 광해군대의 대북정권이 몰락하고 인조반정으로 서․남인 연립정국이 성립되었다. 국외적으로도 중국 명․청 교체의 여파로 명과 청은 조선에 양면으로 영향력을 행사, 조선은 외교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었다.
이런 긴장상태에서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평북 철산의 가도에 주둔하면서 요동 정벌을 계획한 것이 청의 심기를 건드렸고 후금은 조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중원을 정복할 수 없다고 판단, 그 결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이상규, 「소현세자를 죽인 어질지 못한 인조」,『교회와 신앙』
이덕일 ,『누가 왕을 죽였는가』, 푸른역사
이이화, 『이야기 인물 한국사』, 한길사,
박은봉, 『한국사 뒷 이야기』 , 실천문학사,
신봉승, 『성공한 왕 실패한 왕』, 동방미디어, 2002,
서정우, 『이야기 조선 왕조사』, 푸른숲,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