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원의 실학사상
- 최초 등록일
- 2010.04.03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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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유형원의 생애와 실학사상을 <반계수록>을 중심으로 해서 서술한 글.
목차
1. 반계 유형원의 생애
2. 유형원의 학문적 배경과 경향
3.《반계수록》의 구성과 내용
(1) 토지제도 개혁론
(2) 관료제도 개혁론
(3) 군사제도 개혁론
(4) 교육제도 개혁론
(5) 노비제도 폐지
본문내용
그의 토지제도 개혁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전제도(公田制度)로 표현될 수 있다. 즉 토지의 사적 소유를 없애고 모든 토지를 공전(公田)으로 하여 농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되 사회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둔다는 것이다. 이는 종전의 과전법(科田法)보다 한층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과전법에서는 일반 농민이 토지지급의 대상에서 빠졌지만 일반 농민층에게 경제적 기반으로 1호당 1경, 즉 약 40두락의 땅을 지급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그들이 공부에 응하고 가계를 세우며 양생송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유형원은 소위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의하여 토지를 분배받은 자가 죽거나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으면 이를 회수하며, 상공업자에게는 농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토지를 주고, 무당이나 승려나 창부들에게는 토지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는 토지는 천하의 근본이기 때문에 먼저 토지소유관계의 경계(經界)가 똑바르면 모든 일이 바로 잡힐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과전제도 아래서는 많은 농민들이 사전(私田)의 소작인으로 될 수밖에 없었지만 공전제도에서는 농민들에게 일정한 토지가 지급되므로 원칙적으로 소작제도가 없어지는 것이었고, 관료들이 지급받는 토지는 그 노비나 솔정(率丁)이 경작하게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형원의 공전제도는 그 보다 약 2세기 후의 실학자인 정약용에 의해 고안된 여전제(閭田制)에 비하면 많은 제약성을 가지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1. 유형원 외, 강만길 외 역, 《한국의 실학사상》, 삼성출판사. 1988.
2. 한국철학사연구회 지음,《한국 실학 사상사》, 다운샘, 2002.
3. 조현규 저, 《한국의 윤리사상》, 중문, 2001.
4.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5. 김철호 외 엮음,《세계의 사상 100선》, 녹두, 1992.
6. 황광욱, 정성식, 임선영 저, 《한권으로 읽는 한국철학》, 동녘,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