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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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종묘 답사는 화창한 날씨 속에서 진행되었다. 종묘는 도심 가운데에 있는 죽은 자들의 세계이다. 조선의 왕이 제례를 주관키 위해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엄숙히 들어갔듯 나 또한 종묘 바깥의 세계, 과학의 세계, 현대에서 어도를 따라 점점 더 깊이 조선으로 나아갔다.
종묘의 첫 인상은 경복궁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경복궁이 화려했다면 종묘는 무거웠다.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내던 경복궁의 단청을 종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고, 경복궁에서 보이던 다채로운 색들이 종묘에 와서는 초록색, 고동색과 같은 단조로운 색들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무거움과 간결함은 결코 어두움이나 ‘멋없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종묘의 이 연출된 건축 기법은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제례 때 임금이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다는 망묘루로 갔다. 그들은 묘를 바라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작년 이맘 때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서 성난 촛불들을 바라보며 자성했다던 말과 함께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묘하게 겹쳐져 떠올라 마음이 아려왔다.
조선의 국왕들도 모두 자리하고 있지 못한 종묘에서 고려의 개혁군주 공민왕을 만났다. 그는 망묘루 옆, 공민왕 신당에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모셔져 있었다. 조선 개창의 명분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에, 유교 정신의 명분론이 조선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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