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 조사
- 최초 등록일
- 2010.05.04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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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교종교학 시간에 발표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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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교조
Ⅱ.종교사상의 표현
1. 경전
2.신관
3.이원론적 사상
Ⅲ.예배의식
1. 예배 의식
2. 새 제사장 세우기
3. 순결 의식
Ⅳ.비교종교적 관점에서 본 제 종교와의 관계
본문내용
조로아스터교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포로 귀환령을 내린 바사왕 고레스가 신봉했던 종교이다. 이들은 경건한 신앙의 후예들이였으나 회교에서는 이들을 구에브레스(Guebress)라 하여 반신자로 칭하고 잇으며 인도의 봄베이(Bombay)를 중심으로 약 십여만 명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Ⅰ. 교조
조로아스터의 출생 년도는 분명하지 않다. 플루탁(Plutarch)은 조로아스터는 기원전의 5000년에 페르시아에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고, 분다아히슈라 라는 학자는 알렉산더 대왕보다 258년 전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또 기원전 1000년경도 있고, 또 660년의 설을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노스(J.B.Noss) 같은 종교학자는 660년보다 30년 정도 보다 더 앞선 것으로 보고있다.
조로아스터가 출생한 곳은 이란 중동부에서 출생한 듯하고, 그는 페르샤 동부의 위치에 거주하고 있는 스피타마 가계의 부르샤스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 사람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5세때는 쿠스티(Kusti)라는 성스러운 노끈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의 양친에 의해 맺어 점지해 준 부인을 떠나서 종교적인 방랑의 길을 떠난다.
많은 종교 교조들이 그러하듯이 조로아스터도 30세에 신의 계시를 받게 된다. 그의 최초의 계시는 그의 고향이 가가운 곳이 다이티아(Daitya) 강변에서 일어났다. “사람의 몸의 9배나 되는 체구의 몸”을 가진 거인이 조로아스터에 나타난 것이다. 그의 천사장은 보후 마니흐(Vohu Manah, 선한 생각) 였다. 그는 조로아스터에게 물질적인“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순수한 영혼의 옷을 입도록 전능한 신 아후라 마즈다에게 다로고 허락하였다.
이같은 소명과 계시를 받은 조로아스터는 바로 그의 체험을 전하지 못했다. 그에게 악마의 시험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악령 앙그라마이니우(Angra Mainyu)가 조로아스터에게 나타나 아후라 마즈다에게 예배하는 종교를 버리도록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때 조로아스터는 나의 생명과 사지와 영혼이 갈기갈기 찢기더라도 아후라 마즈다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였다.
조로아스터의 왕궁을 중심으로 20년간의 포교는 또한편으로는 외부 세력과 외부세력으로 침입을 받아 두차례의 성전을 치루게 되었다. 다행히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명장 이스펜디르가 이들을 물리치게 되므로서 비쉬타시파 왕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같은 여세느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의 국교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두 번째 시험은 기원전 584년경에 북편의 유목민과 브라만교도들이 다시 침입함으로서 비쉬타르군은 패전하게 되었고 그 전투에서 조로아스터도 7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