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백제개관
- 최초 등록일
- 2010.05.05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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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에 대한 개관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이 다 포함되어있어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 시조 온조왕에서 사반왕까지는 소국적 질서가 남아있는 소국-소국연맹시기/ 고이왕에서 계왕까지는 소국연맹에서 중앙집권체제에 이르는 과도기인 五部체제시기/ 근초고왕 이후는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시기/ 이후의 한성시대 전기(근초고왕~아신왕), 한성시대 후기(전지왕~개로왕), 웅진시대(문주왕~무령왕), 사비시대(성왕~의자왕)
- 小國-小國聯盟 단계는 족제적 성격이 강한 國邑-邑落체제가 유지.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면서 국읍-읍락을 재편한 城(村)이 사회편제의 단위가 됨. 농업생산력 증대로 자연촌이 성장하여 사비시대의 단위.
- 백제 구성 주민은 여러 갈래. 선주토착민 韓人이 주류에 濊人이 섞임. 이들은 주로 백제 피지배층을 형성. 지배층은 왕족과 解氏 등 부여족 계통이 중심. 4세기 이후 신라인, 고구려인, 왜인, 중국계통도 지배세력으로 등장.
- 한성시기는 적석총 등 고구려적 성격. 웅진 사비로 천도하며 남조문화를 받아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
2- 백제 건국사 정리 시 문제점 :
4- 4세기 초 낙랑대방 소멸 후 광개토왕의 남진에 대항하고자 위세력을 끌어들이기도 함. 비유왕대 신라와 공수동맹. 하지만 개로왕은 장수왕의 공격으로 전사. 웅진천도 이후 신라와의 공수동맹 지속되었으나 성왕 31년 진흥왕의 한강 점령으로 적대관계가 됨. 상호 대립관계가 지속되다 唐의 성립으로 여제연합 탄생, 나당연합에 대응하는 외교노선 성립.
- 백제와 중국과의 관계 : 朝貢冊封遣使請求戰爭會盟 등. 이 중 朝貢과 封冊이 주류. 이를 외교행위로 보는 것이 정당. 백제 초기 중국과의 관계는 낙랑대방 중심으로 행해지고, 근초고왕이 東晋에 사신을 파견하고 동진으로부터 ‘鎭東將軍領樂浪太守’의 관호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진행. 대중국 외교는 지리상 남조를 중심으로 했으나 때로는 고구려봉쇄를 위해 북조와 외교접촉을 추구하기도 함. 웅진천도 초기 고구려 방해로 단절되기도 했으나 동성왕 이후 재개. 사비 도읍기에는 남북조 모두와 외교교섭을 가지는 등거리외교 구사.
- 倭와의 관계는 주로 우호원조의 형태로 나옴.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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