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발란신과 바슬라브니진스키의 생애및업적
- 최초 등록일
- 2010.05.10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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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지발란신과 바슬라브니진스키의 생애및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리
목차
Ⅰ.조지발란신
발라신의 무용에대한 공헌 및 주요작품
Ⅱ.바슬라브 니진스키
니진스키의 무용에 대한 고헌
니진스키의 남성발레리나의 위상
본문내용
조지발란신은 1904년 1월 22일 제정 러시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상당히 알려진 작곡가 벨리톤 바란쉬바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조르지 멜리토비치 바란쉬바즈였다. 노르지는 5세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10세가 되었을 때에는 황실 발레 학교에 입학했다. 16세 때 학교 발표회에서 루빈스타인인의 ⌜밤⌟을 안무한 사랑의 듀엣은 그의 처녀작이라 할 수 있다. 1921년에 졸업을 하고 발레단의 군무진으로 활동하면서 음악이론과 피아노를 배웠다. 1922년 ⌜젊은 발레의 밤⌟이란 공연에서 ⌜법열⌟과 ⌜장송행진곡⌟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또 한번의 ⌜젊은 발레의 밤⌟에서는 ⌜지불위의 수소⌟,⌜시저와 클레오파트라⌟를 발표하였지만 보수적인 마린스키는 그를 내쫓았고. 1924년에 그는 소련을 떠나게 되었다.
1925년 파리에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만나 발레뤼스에 합류하면서 그의 생애는 큰 전환기를 맞이한다. 디아길레프와 함께 일한 4년반이란 기간에 그의 심미학적 윤곽이 구축됐고 가치 판단의 기준이 섰으며, 경험과 취미가 원숙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가 스스로 “내 생애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한 ⌜아폴로⌟와 ⌜돌아온 탕아⌟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의 의의는 ‘신고전주의’라고 할 수 있는 발란신의 안무 경향을 결정지어 준 것이고, 그의 생애에서 스트라빈스키를 처음 만났다는 것이. 그러나 1929년 디아길레프가 사망하고 발레뤼스가 해체되었을 때 발란신은 안무가로서 굳건한 기반을 구축한 뒤였으나 각 유럽을 망명자처럼 떠도는 처지가 되었다.
1933년 미국의 저명한 발레사가인 링컨 커스타인이 그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같은 해 차이코프스키의 모차르트 조곡에 맞춘 ⌜모츠르티아나(Mozartiana)⌟를 안무하였는데 이는 유일한 주제가 반주음악인 발란신의줄거리 없는 발레의 첫 시도였다. 1934년에 또 하나의 대표작인⌜세레나데⌟를 아메리칸 발레단 (School of A merican Ballet)을 위해 창작했고, 그 후 10년 동안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136년 발란신은 대성공작인 ⌜10번가의 학살(Slughter on Tenth Avenue)⌟을 선보였는데, 이는 ⌜조심조심(On You Toes)⌟의 무용판으로 폭력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그의 부인중 한명이었던 타마라 게바는 브로드웨이판 발레에 주역을 맡았고, 좀더 젊은 부인인 베라 조리나(Vera Zorina)는 1939년에 영화에 출연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