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재조명하기
- 최초 등록일
- 2010.05.14
- 최종 저작일
- 2006.03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글쓰기 수업에서 A+받은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광해군은 조선 500년사에서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왕이면서 왕이 아니게 된 두 명의 왕 중에서 한명이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인조반정 이후에 나온 역사책은 그를 왕으로 보지 않고 패륜아, 폭군의 이름으로 불렀고, 왕들의 일기를 모아놓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록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러한 비운의 왕을 20세기에 들면서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더 이상 부정적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임진왜란 와중에도 군사를 모았던 일과 그의 대표적인 외교정책인 중립외교정책은 폭군 광해군을 성군 또는 현군 광해군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군’이라고 하는 칭호는 ‘왕’이라고 하는 칭호로 변경되지 않는다.
역사는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해석이 되어질 수 없다. 광해군이 아무리 좋은 업적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잘한 업적이 되고, 그 당시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는 잘못된 일일 경우, 그는 현군이 아니라 폭군이 된다. 여기서 나는 광해군이 왜 ‘군’으로 전락했는지, 왜 폭군으로 불리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조명해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광해군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세자로 책봉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