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창 박록주
- 최초 등록일
- 2010.05.20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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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소리꾼 박록주에 관한 간단한 이력과 짧은 에피소드들을 참고자료를 통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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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 소리꾼 박록주(1905년 2월28일~1979년 5월26일), 본명은 명이, 호는 춘미,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박중근과 권순이의 3녀로 태어났으며 예명이 록주이다. 1916년 부친이 도리사 부근에 머물고 있던 박기홍에게 보내 소리를 배우게 하여 두 달간 심청가,춘향가의 일부를 배우고 이때 예명을 녹주로 지었다한다.
그녀는 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이다. 12세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00년대 초기의 명창으로 불리던 송만갑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1928년부터 음반을 취입하여 판소리음반을 많이 남겼다. 판소리, 창극 등에 능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판소리교육과 보존에 힘썼다. 흥보가 및 춘향가의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서편제가 다수였던 판소리계에서 동편제의 국보적 존재로 많은 제자를 남겼다.
1918년 김창환과 김봉이 등에게 단가와 토막소리를 배웠으며, 대구의 달성권번에 다니며 춤, 시조, 소리 등을 배우며 기생수업을 했다. 1919년 달성권번에서 김점룡, 임준옥, 조진영 등에게 <육자배기>와 <화초사거리>를 배웠다.
1921년 원산부에서 남백우와 만나 살림을 차리고, 가족이 원산으로 이주,1923년 서울로 올라와 송만갑에게 단가 <전국명산>과 <춘향가>,<적벽가> 등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수년에 걸쳐 정정렬에게 <춘향가>,<숙영낭자전>, 김정문에게 <흥보가>,<심청가>, 유성준에게 <수궁가>, 김창환에게 <제비노정기>를 배웠다. 이 때부터 한남 권번에 기적을 두고 명창대회 등에 참가하면서 서울에 명창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1926년 송만갑 등과 음반을 취입한 이후, 콜롬비아, 빅터 등 수많은 음반사를 통해 판소리 음반을 취입하였다. 1926년 9월 16일 경성방송국의 시험방송에 출연, 이후 1945년까지 100여 차례 국악방송에 출연했다.
참고 자료
박록주홈페이지,백과사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