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기행문
- 최초 등록일
- 2010.06.01
- 최종 저작일
- 2010.06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북촌 가희동 31번지를 방문하여 쓴 기행문입니다.
순순히 저의 생각이 들어간 알찬 정보들이 많을 것입니다.
목차
서론 Ⅰ. 답사개괄
Ⅱ. 북촌 한옥마을(가회동)의 역사
Ⅲ. 북촌을 선택한 이유
본론 Ⅳ . 북촌 탐방기
1. 가회동 31번지로 가는길..
2. 가회동31번지를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돈미약국..
3. 간판없는 가게들..
4.. 오랜시간을 같이 해온 정이 가는 골목길..
5. 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한 곳.. 상고재
6. 커피한잔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7. 젊은 카페와 오래된 듯한 상점의 사이좋은 만남.. 별궁길
결론 Ⅴ. 후기 및 아쉬웠던 점들
본문내용
5. 가회동 개괄
정독도서관과 중앙고등학교 사이, 응봉 남쪽 기슭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으며, 북쪽의 삼청동, 남쪽의 계동․재동과 접해 있다. 동 이름은 조선시대의 명칭인 가회방에서 유래한다. 가회란 기쁘고 즐거운 모임을 말하는데 본래 이 동이 북부 기회방 지역이므로 방 이름을 따서 동 이름을 지었다.
조선 초에는 한성부 북부 가회방 지역이었다. 1914년에 맹현․재동 동곡․계동 일부를 합쳐 경성부 가회동이라고 하였고, 1936년 가회정 으로 바뀌었다. 1943년 종로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 다시 가회동으로 바뀌었다.
행정동인 가회동은 법정동인 가회동․계동․재동․원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근 지역은 전통 한옥 보존을 위해 1983년부터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었으나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1991년 해제되었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재동은 조선시대 초의 마을 이름인 잿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잿골이란 명칭은 1453년(단종1) 수양대군 일파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보필하는 황보인등을 유인하여 살해할 때 흘린 피가 내를 이루고 비린내가 나서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재를 가지고 나와 길을 덮었다 하여 동 이름이 유래한다.
현대그룹 본사와 중앙고등학교가 있는 계동은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제생원이 있어 제생동이라고 하다가 계생동으로 변하였고, 줄여서 계동이 되었다.
Ⅱ. 북촌 한옥마을(가회동)의 역사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볼 때, 서울의 최상지는 경복궁이고 다음이 창덕궁이다. 또한 이 궁궐을 연결하는 선상의 지역, 북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서 현 율곡로 좌우측 일대는 주거입지의 최길지였으며, 이 지역은 이른바 북고남저로서 겨울에 따뜻하고 배수가 잘 될 뿐 아니라 남쪽은 넓게 트인데다 안산인 남산의 전망도 좋아 정침이나 사랑이 항상 남면할 수 있는 이점도 지녀 이 일대에 그 때마다의 권문세가들이 모였었다. 이것이 곧 서울에 있어서의 북촌의 형성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