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소프트웨어 발전사
- 최초 등록일
- 2010.06.06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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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의 여러 소프트웨어와 발전사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95/100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
목차
1. 북한의 소프트웨어의 역사
2. 북한 소프트웨어의 발전단계
3. 북한 소프트웨어의 종류 및 기능, 역할
4.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분야와 비교되는 사항
본문내용
남북한간의 과학기술교류가 우리 세대의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 과학기술협력은 남북한 상호이익과 비교 우위의 개념에 입각해 가능한 협력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의 장점을 파악하여 남한의 부족한 분야를 보강하려면 북한의 과학기술발달의 역사와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해방 후 한국에는 과학계 고등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은 일본인들이 운영하다 남기고 간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와 중앙시험소가 전부였으며, 과학 인력도 대졸자가 200명, 이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과학자 5명, 공학자 5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마저 남북 분단이후 양편으로 갈라서게 돼 절반으로 감소했다. 특히 북한은 남한보다도 더 열악한 처지에 놓였었다는 지적이다. 일제시기에 세워진 몇 개의 과학기관들이 거의가 서울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간 미국 유학출신자들이 미군정하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대부분 남하했다.
극심한 과학기술인력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북한은 과학인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남한에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이 추진되자 북한은 1946년 평양시 모란봉 근처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설립, 과학 인력의 대대적인 양성을 꾀하는 한편 구소련으로 해외 유학생을 파견, 장기적으로 고등인력 양성을 추진했다.
나아가 북한은 일본식 과학교육을 받고 미군정의 교육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거나 국립서울대학설립 반대 등으로 시국사범에 연루됐던 남한의 과학기술자들을 대상으로 1946년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남한 내 조직망을 통해 치밀하고 계획적인 월북공작사업을 벌였다는 지적이다.
또 북한은 남한의 우수 과학 인력을 신속히 데려오기 위해 흥남에 남북한 최초의 공과대학인 흥남공업대학(현재 화학공업대학)을 설립했다. 1948년말 당시 이 대학의 전체 이공계 교수 중 월북인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66.7%에 달했다. 북한은 1952년말 평양시 근처 평성에 국가과학원을 서둘러 개설했다.
참고 자료
문화일보 / 네이버 / 구글 코리아 / 북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