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윤락문제에 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0.06.11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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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윤락의 기원을 알아보고, 우리나라 윤락의 역사를 살펴 볼 것이며, 이에 이어서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의 윤락실황에 대하여서도 알아본 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윤락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한 처방과 과제를 모색해봄으로써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목차
1. 序言
2. 윤락의 기원
3. 한반도의 윤락의 역사
4. 한반도 윤락의 현주소
5. 한반도 윤락문제의 해결방안
본문내용
우리나라에서의 매춘의 본격적 시작은 일제시대 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16세기부터 공창제도가 존재하였고, 그들은 식민지였던 한국 안의 일본인 거주지역에 공창제도를 도입시켰다. 1904년 서울지역에서 처음으로 매춘업을 허락하였지만,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사창가는 일본부산영사관에 의해서 부산 부평동의 지옥골목이란 곳에 가장 먼저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1908년에는 기생 등의 윤락녀에 대한 단속령을 만들어 그들을 감시하였고, 1916년에는 전국적으로 단일한 단속 기준을 만들었다. 이것은 ‘공창’ 제도를 인정하게 된 것을 뜻한다. 이를 시발점으로 하여서 매매춘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사창’까지도 번성하게 되었다. 조선 안의 일본인 거주지역과 일본 안에 있는 공창에 대하여서는 일정한 지역에 한정하여서 실시하였지만, 조선인의 매춘업은 일정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그 영업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공창제도를 조선에 도입시킴은 조선인들의 의식을 무력화시키려는 식민통치정책의 일환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일제시대를 지나 미군정기에 들어서, 미군정부에 의해 ‘공창제도폐지령’이 선포되어 공창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매춘을 근절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매춘문화를 낳는데 일환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군정의 시작은 양공주 혹은 기지촌 여성과, 미군을 주요고객으로 유인하려는 기지촌 매춘업주를 등장시켰고, 이것이 공창을 대신할 새로운 매춘문화 형태로써 우리 사회 속에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5. 한반도 윤락문제의 해결방안
윤락문제는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사회는 매매춘 중증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윤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자율적 극복의지를 기르는 것과 더불어 국가의 개입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정부에서는 윤락에 관한 법제와 행정체계를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매매춘이나 퇴폐, 음란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이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강화해야하며, 가부장적 사고, 남녀 차별적 사고에 입각한 법제를 삭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윤락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설에 대하여서 철저하게 단속해야 하며, 쉽게 볼 수 있는 지역신문이나 직업소개소 등을 통한 윤락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광고내용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윤락여성들이 겪는 성병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윤락여성들에게 성병예방 및 검진에 대하여서 적극적으로 알림은 물론, 그들의 비밀을 보장하여주고 정기적으로 성병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