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도장골 시편
- 최초 등록일
- 2010.06.18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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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달팽이
김신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감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納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나뭇잎 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
치워라, 그늘!
(문예중앙 2006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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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람 사는 집보다 폐가가 더 많은 산골마을 도장골.. 시인 김신용은 도장골 시편을 통해서 버려진 것, 소외된 것들을 보듬어 안는다. 아내는 재봉틀을 돌리며 수의를 만들고 남편은 수의를 재단하며 살던 지하단칸방 에서 충북 영동의 산골마을로 이사 간 날. 시인은 풀밭마당에 놓인 아내의 재봉틀을 보면서 ‘풀에서 뽑아낸 실로 지어, 풀처럼 깨끗이 삭아갈’ 하루하루를 꿈꾸었다. 물이 되어 똑똑 흘러내리는 ‘사해 문서를 기록하는 펜촉’ 같은 고드름, 핏줄을 얼어붙게 하는 혹한 속 이 고드름 속에서 ‘적설의 깊이만큼이나 패인 웃음’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이사 온 집 마당의 잡풀을 뽑다가 하얗게 머리가 센 민들레 씨방에서 자식을 키우기 위해 굽은 허리도 곧게 펴는 모성을 생각하는 김신용 시인.. 도시의 삶을 벗고 도장골에 들어와 자연의 지혜를 배우고 있는 농부시인 김신용.. ‘밭을 맬 때 풀만 뽑을 것이 아니라 뿌리를 북돋워줘야 한다는 것.’ 그것은 ‘바깥으로 헛뿌리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일, 드러난 잔뿌리는 물기 마르지 않게 흙손으로 다독여주는 일’이란 것을 지나가는 동네할머니에게서 배우며 자신의 무지를 깨운다.
그가 2005년에 개복숭아 숲이 우거진 충북 충주시 신리면 `도장골`에 내려가 일기를 쓰듯 써내려 간 연작시가 바로 도장골 시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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