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태의 발발과 김재규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10.06.18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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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0.26 사태의 발발과 과정을 김재규에 대한 탐구로 바라본 4장 분량의 레포트입니다.
목차
I. 서론
- 선정동기와 주제에 대해
II. 본론
- 10. 26 사태의 배경과 발생
-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에 대한 5가지 설
- 개인적인 생각
III. 결론
-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의 원인들
*참고 문헌
본문내용
I. 서론
이 글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불러온 10.26 사건을 재조명하고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의 동기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10.26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의 몰락을 불러온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나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4년 전 개봉된 영화, <그때 그 사람들>를 통해 피상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그 원인에 대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본 보고서의 목적이다.
II. 본론
먼저 10.26 사태에 대해서 기본적인 정보들을 짚고 넘어가보자. 유신 체제 말기, 박정희의 1인 독재 체제는 정당성을 잃고 반정부 시위와 반대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등 위기에 있었다. 또한 박정희는 반대세력들을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억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 온건파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그런 박정희의 강경노선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또한 당시 경호실장이던 차지철이 박정희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 차지철은 박정희를 등에 업고 월권을 비일비재하게 저질렀으며 김재규와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과 종종 마찰을 빚었다 (오창헌 2001, 157~159).
이러한 상황 하에서 10월 16일 부마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곧 계엄령이 선포된다. 김재규는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부산에 내려가는데, 여기서 그는 부마항쟁이 단순한 항쟁이 아닌 국민들의 반정부 감정이 폭발한 것이며, 그것의 명분이 매우 정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조갑제 1987b, 77).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강경노선을 완화시키려하지만, 오히려 질책만 듣고 만다.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는 종종 하던 대로 궁정동에 있는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만찬회를 여는데 이 날 저녁 김재규는 차지철과 박정희를 권총으로 쏴 죽이고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육본으로 간다. 이곳에서 김재규는 총리와 장관 등을 불러 국무회의를 열고 박정희 죽음 이후 혼란스러울 수 있는 정국을 안정시키려 한다. 하지만 당시 보안사 사령관이자 합동수사부 부장이던 전두환에 의해 체포당하고,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김재규의 박정희․김재규 살해 이유에는 크게 다섯 가지 설이 있다.
참고 자료
오창헌 「10․26 사건의 원인 분석 : 김재규의 행위와 동기를 중심으로」한국정치정보학회, 2001,『정치정보연구』1월호, 143~170
천호영 「10․26과 김재규의 진실」월간말, 1993, 『월간말』11월호, 134~141
지만원 「12.12~5.18의 진실①~⑤」한국논단, 2008, 『한국논단』223호~227호
이성희 「정승화 전 계엄사령관 본격 반중 : 쿠데타 주범들은 지금도 내 혐의를 조작하고 있다」 사회평론, 1994, 『월간 사회평론 길』7월호, 88~93
영화 <그때 그 사람들>, 2005